제5화
송하영이 눈을 떴을 때 첫눈에 들어온 장면은 초췌해진 심도윤의 얼굴이었다.
심도윤은 송하영이 깨어나자 평소와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난 소연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환자니까.”
송하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해해요.”
심도윤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며칠 후면 신장 기증을 해야 하니 무리하지 말고 몸을 아껴야 해.”
송하영은 그 말을 듣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왜 여기에서 날 간호해주냐 했더니 소연 씨한테 신장 기증하는 데 문제 생길까 봐서였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심도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약속은 잊지 않을게. 비록 결혼하더라도 평생 너를 지켜줄게.”
송하영은 그 말을 듣더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필요 없는데...'
그 후 심도윤은 다시 오지 않았다. 송하영은 혼자서 수액이 다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퇴원 절차를 마쳤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스트레처 한 대가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심도윤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고 그 위에 누운 사람은 놀랍게도 임소연이었다.
송하영의 머릿속은 순간 하얗게 변했다.
전생에서 송하영이 신장 기증을 거절해 임소연이 죽었지만 이번에는 기증하기로 했는데도 임소연이 또 응급실로 실려 오고 있었다.
이유를 찾을 새도 없이 송하영은 응급실 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응급실 문 앞에서 심도윤은 넋 나간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그의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송하영이 사정을 묻자 임소연이 목욕하던 중 어지러움을 느껴 욕조에 머리를 부딪쳐 출혈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임소연이 혈액 응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다.
잠시 후 의사가 응급실에서 나왔다.
“지금 당장 수혈이 필요합니다. 가족 중에서 가능한 분 계십니까?”
심도윤이 벌떡 일어섰다.
“저요!”
“환자는 Rh 음성 혈형입니다. 혈액 형이 어떻게 되세요?”
심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B형이요...”
Rh 음성 혈형은 희귀한 혈형이었다. 현장에서 송하영만이 해당 혈형을 가지고 있었다.
송하영은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제가 수혈할게요!”
송하영은 전생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제야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참인데 역사를 다시 반복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송하영은 간호사의 안내로 1000mL의 피를 뽑았다.
헌혈을 마치자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헌혈 실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은 아무도 없었다.
송하영은 즉시 주삿바늘을 뽑고 침대에서 내려 맨발로 임소연의 병실로 달려갔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따뜻한 장면이었다.
심도윤은 간신히 되찾은 듯 임소연을 꼭 안고 떨린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임소연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죽었으면 오히려 너와 하영 씨를 이어줄 수 있었을 텐데...”
심도윤은 임소연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눌러 담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소연아,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들려? 내 심장은 오직 너만을 위해 뛰고 있어.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이생과 다음 생, 그 다음 생도 영원히 너만 사랑할 거야.”
송하영의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듯 너무 아팠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슬픈 심정을 억누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번 생에는...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