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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강나리는 이런 주제로 학교 포럼을 열었다. [연인이 조선시대 왕인데 천 년을 거슬러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 과연 나는 연인과 함께 돌아가야 할까?] 그녀가 올린 글 밑에는 어느새 댓글이 수천 개가 달렸다. “고고학자도 이런 로맨스 소설을 보네요?” 옆자리에 있던 동료가 농담처럼 말하자 강나리는 책상 위에 놓인 술을 단숨에 비우고는 밖으로 나가 휴대폰으로 CCTV를 켰다. 뭐, 어쩔 수 없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강나리의 남편이자 남편과 바람 난 여자는 그녀가 후원하던 가난한 학생이었으니까. 조선시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밀실 안, 남자는 하늘과 땅, 그리고 부모님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말하던 유재훈이 지금은 송하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발끝에 입을 맞추더니 결국 침대 위에 그녀를 눕혔다. “재훈 오빠,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알면 나를 쫓아내지 않을까?” “너는 나리의 마지막 제자이자 나의 운명 같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강나리는 유재훈의 단호하고 진지한 약속을 들으며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은 늘 말했었다. 길가에 멍하니 서 있는 남자는 절대 집으로 들이지 말라고. 강나리는 늘 그 말을 토대로 살았지만 길가에 있는 남자 대신 오래된 묘에서 주웠다. 5년 전, 강나리는 교외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장치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여기서 죽을 거라고 생각한 순간, 황제 옷을 입은 유재훈이 나타나 사방에서 날아오던 화살을 모두 베어냈다. “영의정이 그러더구나.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황후가 여기 있다고.” 당연하게도 강나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유재훈은 한국의 정보와 역사, 심지어는 기록에 남지 않은 내막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침 그가 말한 모든 것은 강나리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그녀는 유재훈을 ‘살아 있는 교과서’라는 명목으로 데려왔다. 강나리는 그에게 휴대전화 쓰는 법을 가르쳤고 유재훈은 그녀에게 가야금을 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느 날, 사막의 별빛 아래에서 현대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마침내 미래 그룹을 설립한 유재훈이 고개를 숙여 강나리에게 입을 맞췄다.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강나리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해 연말, 북서 지역에서 유재훈이 송하나의 손을 잡고 다른 사람의 라이브 방송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야근 중이야. 괜히 딴생각하지 마. 그건 다 오해야.” 3시간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밤새 달려온 강나리는 텅 빈 회사 사무실에 서 있었다. 그러다 책상 위에 놓인 자료를 보는 순간,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건 송하나의 모든 자료였다. 우연처럼 보였던 후원도 사실은 전부 유재훈이 미리 짜놓은 계획이었다. 그날 밤, 강나리는 빗속에 서서 밤새도록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송하나를 안고 돌아온 유재훈을 본 그녀는 그대로 무너져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유재훈은 아무렇지 않은 담담한 말투로 집사에게 말했다. “하나 데리고 침실로 가서 푹 쉬게 해.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그러고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나는 내 운명 같은 사람이고 전생에서 나 대신 화살을 맞아준 귀인이야. 내 목숨을 구한 은인이기도 하고. 너와 결혼한 이상, 난 너를 끝까지 책임질 거야. 하지만 하나에게 입은 은혜도 갚아야 해.” 결국 강나리는 유재훈의 말에 설득당했다. 그러나 다음 날, 학교 포럼에는 송하나의 노골적인 애정 과시가 올라와 있었고 유재훈이 좋아하는 향수 냄새가 가득 밴 채 수업에 들어온 송하나는 쇄골 위에 남은 키스 자국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걸 본 강나리는 송하나에게 반년 동안 교환 학생을 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날 밤, 유재훈은 6억이라는 돈으로 학교 측에 부탁해 사람을 바꾸게 했다. “하나가 안 가면... 우리는 이혼하자.” 자기가 보는 앞에서 신청서를 찢긴 강나리는 화가 나 이혼 합의서를 꺼냈다. 그러나 유재훈은 보지도 않고 그대로 분쇄기에 넣어버렸다. “나리야, 떼쓰지 마. 난 너랑 결혼했으니 책임은 져. 하지만 난 현대인이 아니라 일부일처제에 적응하기 어려워.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해.” 그렇지만 흰색을 싫어하고 고지식하기 그지없던 유재훈은 눈처럼 하얀 결혼식장에 치자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그녀에게 평생을 맹세했다. 지금, 강나리는 휴대전화를 꽉 쥔 채 음란하고 퇴폐적인 장면을 바라보며 창백해진 손끝으로 녹화 버튼을 눌렀다. 이내 유재훈에게 전송하자 CCTV는 얼마 지나지 않아 꺼졌다. 별장으로 돌아오자 담배 냄새를 가장 싫어하던 남자 앞에 여러 개의 담배꽁초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송하나는 울먹이며 달려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선생님,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영상은 올리지 말아 주세요.” 강나리는 불쌍하고 무고한 얼굴 뒤에 숨은 그녀의 도발 어린 눈빛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래. 난 안 올려도 돼. 대신 하나만 선택해. 네가 당장 사라지든지, 아니면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든지.” “그만해!” 유재훈은 그 말에 소리를 지르더니 마지막 이성을 붙잡은 채 겁먹지 말라고 송하나를 달래줬다. 그리고 눈이 붉게 충혈된 채 강나리를 끌어 방으로 데려갔다. “나리야,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번엔 네가 먼저 선을 넘은 것 같네. 하나는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어린애야. 난 네가 하나를 망치게 둘 수 없어.” 강나리는 유재훈을 세게 밀쳤다. 불과 몇 초 전, 그가 다른 사람을 만졌다는 생각만 하면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나 남자의 힘은 너무 강했기에 몇 초도 안 돼 옷은 다 벗겨졌다. 더 절망적인 건, 유재훈은 강나리의 휴대폰를 꺼내 그대로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을 촬영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리야, 이 영상들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 않으면 나를 몰아붙이지 마.” 절망한 강나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녀가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유재훈은 더 거칠어졌다. 강나리가 목이 쉬어 말을 할 수 없을 때까지 그는 온몸에 키스 자국을 남긴 채 인형처럼 안고 욕실로 끌어갔다. “유재훈, 너 그냥 차라리 조선시대로 돌아가.” 강나리는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유재훈은 그녀가 아직도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잔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난 계속 네 옆에 있을 거야.” 그가 떠난 뒤, 강나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디 제 집착과 집념을 거둬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상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한번 거두면 열흘 뒤 9개의 별이 일렬로 맞물릴 때 유재훈 씨는 반드시 조선시대로 돌아가야 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사막에서 했던 고백이 끝난 뒤로 강나리는 늘 유재훈이 떠나는 꿈을 꿨었다. 그는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나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누군가 가슴을 꾹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모든 고서를 뒤졌고 3000개의 계단을 기어오르며 9번 죽을 고비를 넘겨 심혈을 기울여 유재훈을 위해 등불 하나를 밝혔다. 집착으로 인해 그를 붙잡고 있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유재훈을 조선시대로 데려갈 수 없었다. 하지만 강나리는 휴대전화 앨범 속에 있는 자신을 모욕한 영상들, 유재훈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영상들을 삭제했다. 모든 건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초기화되었다. “네. 그렇게 할래요. 저 결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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