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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다음 날, 강나리는 무거운 무언가에 몸이 깔린 듯한 느낌을 애써 이겨내고 비틀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 시각, 송하나는 단정하고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앞에는 정성스럽게 차려진 고급 디저트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사실 그 모든 것은 강나리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들이었다. 예전에 임신 사실도 모른 채 유재훈이 계화 향이 나는 떡을 사다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 먹고 나서 알레르기 반응이 왔고 그 바람에 첫 아이를 잃었다. 그 후로 그녀는 한동안 깊은 우울감에 빠졌고 유재훈은 강나리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며 다시는 그런 음식을 사 오지 않았고 심지어 냄새조차 집 안에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강나리는 눈을 똑똑히 뜨고 유재훈이 직접 송하나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모습을 바라봤다. “너 이 떡 좋아했잖아. 기억나?” 그제야 알았다. 그는 이미 그때부터 전생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나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지친 얼굴로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때 유재훈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오늘 묘지에 가는 날 아니었어?” 유재훈의 무덤은 강나리가 연구하던 분야였다. 그때의 그녀는 어리석게도 유재훈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자료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러 가는 길이었다. “하나도 같이 갈 거야. 학교엔 내가 이미 얘기해 놨어.” 유재훈은 늘 이런 식이었다. 이미 자기들끼리 결정을 내리고는 강나리에게 묻는 척하는 것. 강나리가 도착했을 때, 송하나는 이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선생님, 조금만 더 하면 과제 완성할 수 있는데 계속 안 하실 건가요?” 강나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이내 송하나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옥비녀에 손을 대려 하자 강나리는 즉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건 만지면 안 돼. 망가지기 쉽거든.” 강나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송하나는 금세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저... 저도 안 되는 건 알아요. 그래도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저 너무 무섭잖아요.” 강나리는 평온한 얼굴로 사람을 불러 그녀를 밖으로 데려가게 했다. “송하나, 수업 시간에 내가 한 말... 다 잊었니?” 그녀는 진짜로 멍청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는 구분할 수 있었다. 곧, 송하나가 표정이 잔뜩 굳은 채 쫓겨나자 옆에 있던 학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송하나를 지켜주는 후원자가 있다던데 혹시라도...” 사실 학교에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송하나가 재력가를 등에 업었다는 사실을. 다만 아무도 그 후원자가 강나리의 남편이라는 건 몰랐다. 강나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남은 힘을 쥐어짜 마지막 주의 사항만 전달했다. 정리가 끝날 무렵, 유재훈이 들어왔고 옆에 있는 송하나는 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다 비켜주세요.” 이내 유재훈이 차갑고 강압적으로 명령하고는 그는 송하나가 손댔던 옥비녀 앞에 다가가 몸을 숙여 그걸 집어 들었다. “나리야, 하나가 내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면 그냥 주면 되잖아. 왜 애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강나리는 유재훈이 아무렇지 않게 비녀를 들어 송하나에게 건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자 송하나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옥비녀를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더럽네요.” 정교하게 조각된 비녀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송하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유물들을 모조리 쓸어 떨어뜨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만해.” 강나리는 입술을 깨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유재훈의 묵인과 송하나의 난폭함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화병을 던지려는 송하나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송하나도 지지 않고 강나리를 밀쳤고 그 바람에 그녀의 종아리에 못에 박혔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저도 순간 화가 나서...” 송하나는 미안한 척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돌아가면 과제도 열심히 할게요. 부디 유 대표님을 너무 탓하지 마세요. 그냥 억울한 저 대신 나서주신 거니까.” 강나리는 유재훈이 급히 송하나를 달래는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 그녀의 상처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낯선 이를 대하듯 냉담했다. 유재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나리를 보다가 이내 상처에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난 네가 하나랑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결국 넌 질투심에 미친 여자가 됐구나.” 그 말과 싸늘한 눈빛을 본 순간 강나리는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럼... 그냥 날 버릴래?”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내뱉은 그녀의 말에 유재훈은 완전히 격분했다. 그는 강나리의 상처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끌어 구석으로 데려간 뒤 어떤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모르겠다면 어쩔 수 없네. 여기서 네 죄를 깨우칠 때까지 반성하고 있어.” 이내 대문이 빠르게 닫혔고 눅눅하고 어두운 공간에 갇힌 강나리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밖에서는 송하나의 애교 섞인 목소리만 들려올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나리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런 순간에 아주 오래전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꽤 높은 곳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과 아래에 보이는 천군만마, 그리고 갑옷을 입고 옆에 서 있는 유재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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