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4화

강나리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고개를 들며 물었다. “내 대역으로 사는 건 재밌어? 넌 유재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만약 걔가 알게 되면 치를 대가가 무섭지도 않니?” 그 말은 송하나가 쓰고 있던 위선적인 가면을 단번에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송하나는 오만하게 어깨를 쫙 펴고 다가와 서류봉투를 빼앗으려 했다. “재훈 오빠가 진실을 알게 될 땐 이미 저를 사랑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연약하기만 한 그녀의 몸은 현장을 전전하며 발굴을 해온 강나리의 몸을 당해낼 수 없었다. 곧, 그녀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으로 송하나를 창가 쪽으로 내던졌다. “악!” 복도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자 강나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다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유재훈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송하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강나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문화재 망가뜨리지 않을게요. 저를 고발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은 신분도 높고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겠지만 저는 퇴학당하고 싶지 않아요.” 유재훈은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서류봉투에 멈추자 강나리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유재훈, 잘못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해.”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그녀가 떠나려던 때, 유재훈은 강나리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그래. 하지만 하나는 학교를 그만둘 수 없어.” 유재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강나리, 그러는 넌 남학생들과 어울렸잖아. 차라리 이 기회에 모든 죄를 네가 뒤집어써. 그것도 일종의 속죄야. 네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이기도 하고.” 강나리는 그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마음이 편해진다고? 지금 네 마음이 불안한 거겠지. 유재훈, 대체 누가 누구를 배신했는데? 먼저 바람피운 건 너잖아. 그건 왜 쏙 빼놓고 말해?” 그녀의 말에 유재훈은 손을 번쩍 들어 강나리의 뺨을 때렸다. 짝! 이윽고 강나리의 뺨에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 그녀의 눈빛에 가득 찬 실망감을 마주한 유재훈은 잠시 멈칫했지만 그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잠시 후, 그의 명령에 사람들이 몰려와 강나리를 제압했고 그렇게 서류봉투를 빼앗겼다. “유재훈, 정말 한 번도 안 볼 거야?” 강나리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버텼다. 하지만 모든 증거는 잘게 찢긴 종잇조각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볼 필요 없어. 나리야, 넌 말을 너무 안 들어서 문제야.” 유재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당장 사람 불러. 강나리를 별장으로 데려가서 수뢰에 가둬.” 솔직히 강나리는 그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곧, 입이 막힌 채 끌려가 차갑고 눅눅한 물속에 던져졌고 몸에는 커다란 돌이 묶였다. 숨이 끊기기 직전, 누군가 그녀를 끌어올려 아주 잠깐 숨을 쉬게 했다. “나리야, 조선시대에서 죄를 지으면 돼지우리에 갇혀 먹이가 되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어.” 유재훈은 마치 타인을 보듯 담담했지만 강나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되나?’ 그제야 그녀는 황제의 무정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낸 사람이 지금은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자백서 앞에 끌려갔고 상대는 피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하나씩 억지로 폈다. 새빨간 색의 지장이 찍히는 순간, 강나리는 고통을 못 이겨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학교 게시판에는 그녀를 향한 비난이 가득했고 악의적인 말들이 넘쳐났다. 유재훈이 천천히 다가와 강나리의 체온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녀는 몸을 피했다. 그러자 그는 강나리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빼앗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학교 쪽에는 징계 연기 신청을 해놨어. 하나가 졸업하면 넌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송하나의 졸업까지는 앞으로 3년, 유재훈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3년을 묶어두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나리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괜히 고집부리지 마.” 그 후 사흘 동안, 강나리는 증거를 정리하고 짐을 모두 챙겼다. 송하나는 그녀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유재훈에게 애교를 부렸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선생님이 다시 영상을 올리기로 마음먹으면 어떡해?” 그때, 유재훈은 캐리어를 들고 내려오는 강나리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송하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나리는 너한테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그의 말에 강나리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 안에는 두 사람이 함께한 세월의 흔적과 유재훈이 이 세계에 와 점점 익숙해지던 모든 기억이 담겨 있었다. 이제 그는 현대의 법칙을 완전히 익혔지만 강나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 후 이틀 동안, 유재훈의 SNS에는 송하나의 손을 잡거나 서로 입을 맞추는 사진들만 올라왔다. 댓글은 하나같이 그를 칭찬하는 것뿐이었다. [저렇게 미쳐버린 아내를 두고도 유 대표님은 끝까지 책임지네.] [축하합니다, 유 대표님. 일생일대의 약속은 잘 지키시네요.] 강나리는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시선은 절의 스님에게서 온 메시지에 멈췄다. [강나리 씨, 집착과 집념을 없애시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오셔야 합니다. 그건 직접 쓴 사람이 없애야 하거든요.] 그날, 강나리는 곧바로 절로 향했다. 하지만 3000개의 계단을 다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계단 한 개씩 오르며 절을 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문득 서늘해졌다. 한때 강나리 역시 이토록 집착에 사로잡혀 유재훈을 위해 기도했었다. 어느덧 산 정상에 도착해 스님이 건네준 패를 받아 드는 순간, 그녀는 송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눈빛은 오히려 송하나가 유재훈의 아내고 강나리는 불륜녀같았다. 이내 강나리는 송하나를 위해 햇빛을 가려주려고 양산을 꼭 쥐고 있는 유재훈을 발견했다. “너한테 집에서 쉬라고 말했을 텐데... 설마 우리를 따라온 거야?” 그의 시선은 강나리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으로 향했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