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모두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역시 전우빈이야!”
“자, 체육부장! 심윤서 남자 친구가 직접 허락했는데 뭐 하러 망설여? 빨리 키스해!”
하지만 체육부장은 심윤서를 보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는 퀸카랑 키스할 기회인 줄 알았는데 심윤서라면 됐어. 그냥 술 마실게.”
체육부장이 술을 따르려는 순간 심윤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몸에 걸친 하얀 니트를 벗어 탁자 위에 던지고 레드 와인 한 잔을 가득 쏟아부었다.
새하얗던 니트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흰 옷 입은 사람은 한 명뿐이니 고를 필요도 없겠네. 너희들끼리 재밌게 놀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심윤서!”
KTV 입구까지 따라 나온 전우빈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웠다.
“너 왜 또 이러는 건데?”
평소 말하기조차 귀찮아하던 그가 심호흡하더니 의외로 변명처럼 말을 이었다.
“너희 반 체육부장이 딱 봐도 강하연한테 스킨십하려고 작정했어. 내가 너를 선택하면 그는 당연히 술을 고르겠지.”
“결국 내가 못생겨서 그렇다는 거 아니야?”
심윤서가 차갑게 끊어 넘겼다. 탱크탑만 입은 그녀는 한겨울 밤 추위에 얼굴이 빨개져 있었지만 전우빈을 똑바로 보며 한 마디 한 마디 쏘아붙였다.
“내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물건처럼 처리해도 된다는 거야?”
‘지금의 내가 못생겼단 이유로 강하연의 방패막이로 삼아도 된다는 거냐고!’
마음속 외침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게임일 뿐이야. 무슨 물건 취급이야?”
전우빈의 목소리가 점차 거칠어졌고, 심윤서는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오늘 자리에 흰옷 입은 사람이 강하연뿐이었다면 넌 어떻게 했을 건데?”
전우빈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고, 심윤서는 고개를 숙이며 냉랭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답은 알고 있었다.
만약 오늘 강하연만 있었다면 그녀를 노리는 누구든 전우빈은 서슴없이 막았을 것이다. 어제 인공 호수에서처럼.
하지만 상대가 자신으로 바뀌자 전우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조롱거리로 내몰았다.
이런 생각이 스치자 심윤서는 전우빈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참 뒤 전우빈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심윤서, 지금 이대로 가면 우리 진짜 헤어지는 거야.”
심윤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이미 헤어진 거 아니야?”
말을 마치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이번에는 전우빈이 쫓아오지 않았다.
공원까지 걸어와서야 심윤서는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전의 그녀는 지나친 미모 때문에 수많은 이성의 관심을 받아왔고, 그로 인해 어머니마저 잃었다.
그래서 얼굴과 가문을 숨기고 완전히 낯선 땅에서 새로 시작하려 했지만 여전히 진심은 얻지 못했다.
참고 있던 눈물이 드디어 흘러내렸다. 심윤서는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서울로 돌아갈래요.”
졸업이 코앞이었고 반급 친구들은 모두 취업 준비로 분주했다.
오직 서울시 최고 부자 심씨 가문의 딸인 심윤서만이 그런 걱정 없이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막을 모르는 대학 친구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저 심윤서 봐. 취업 준비도 안 하고 전우빈한테 차인 거 때문에 정신 못 차리는 거 아니야?”
“잘난 척하더니 꼴좋지. 금수저 신랑감 놓치고 혼자 슬그머니 울게 생겼네.”
심윤서는 그들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 미디어 광고학과 학생으로서 그녀가 여가에 찍어 온라인에 올렸던 단편 영화가 수만 명의 팔로워를 모아 놓았고, 덕분에 대학생 영화제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영화제 현장에서 최종 금상 수상작을 목격한 심윤서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며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