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모두의 시선이 한서율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장미영의 비명이 들려왔다.
“세린아!”
한세린이 충격과 공포에 질린 눈으로 한서율을 바라보다, 그 자리에서 쓰러진 것이다.
윤재헌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바로 달려가 한세린을 안아 들고 게스트룸으로 향했다.
한서율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던 순간...
짝!
따끔한 고통과 함께 고개가 꺾였다.
“내가 어떻게 이런 짐승 같은 딸을 낳았단 말이야!”
한태성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세린이는 잔뜩이나 아파서 고생하는데, 감히 저주를 해?”
한서율은 중심을 잃고 뒤로 물러서다가 옆에 있던 샴페인 타워를 건드렸다.
유리잔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샴페인과 깨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피가 배어 나오는 손바닥을 움켜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 아니에요...”
“입 다물어! 네가 예전부터 세린이를 질투했다는 거, 나도 다 알아! 지금 세린이가 죽음과 싸우고 있는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하다니... 넌 정말 사람도 아니구나!”
그는 경호원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당장 끌고 가둬!”
...
한서율은 그렇게 끌려가 창문조차 없는 작은 방에 갇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세상이 꺼진 듯 고요해졌다.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운 탓에 숨이 막혔다.
어릴 적부터 어둠을 두려워하던 그녀는 가빠지는 숨을 억누르며 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렸다.
“문 열어요! 제발... 제발요, 나가게 해주세요!”
문을 두드리던 손이 깨진 유리 조각에 긁혔다.
피가 손끝에서 흘러내려 문 위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바깥은, 여전히 고요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손끝의 감각이 사라지고 가슴이 짓눌리듯 답답해질 즈음 문이 열렸다.
철컥.
하지만 그다음 순간...
“꺄악!”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가 정수리 위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젖어 들며 온몸이 붉게 물들었다.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양동이가 연달아 쏟아졌고 피비린내가 방 안 가득 메웠다.
한서율은 헛구역질이 터져 나왔다.
눈이 따가워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콧속을 파고드는 피비린내에 숨이 막혔고 시야는 점점 뿌옇게 흔들렸다.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가 정수리 위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젖어 들며 온몸이 붉게 물들었다.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양동이가 연달아 쏟아졌고 피비린내가 방 안 가득 퍼졌다.
한서율은 비틀거리며 헛구역질했다. 눈이 따가워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그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문가에 윤재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붉은 피가 쏟아지는 광경을 묵묵히 지켜봤다.
멈추라는 말은 없었다.
마지막 양동이의 피가 쏟아지고 나서야,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 앞에 섰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아줬다.
섬세한 손끝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세린이가 깨어났어. 끝까지 네 탓 안 하더라. 오히려 귀신에 씌어서 그런 거라며, 진심으로 악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네 편을 들어줬어.”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아, 이건 검은 개의 피야. 악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대. 하지만 효과를 보려면... 삼일 밤낮을 이 안에서 버텨야 한대.”
한서율은 온몸을 떨며 그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제발, 믿어주세요...”
“한서율.”
윤재헌은 조용히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
느릿하고, 잔혹할 만큼 침착한 동작이었다.
“잘못했으면 벌받아야지. 그건 세 살짜리 아이도 아는 일이야.”
한서율은 필사적으로 그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제발... 절 여기 두지 말아요. 저 어두운 데 무서워요...”
윤재헌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럼 세린이는? 네가 저주할 때, 세린이도 무서워했을 거란 생각은 해봤어?”
그 한마디에 한서율의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조각이 번쩍 스쳤다.
몇 년 전, 폭우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정전이 되자, 집 안은 순식간에 새까만 어둠에 잠겼다.
한서율은 구석에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
그때, 윤재헌이 방 안에 초를 켜고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서율아,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 따뜻했던 목소리와 온기가, 지금은 잔혹한 냉기로 바뀌었다.
...
갑자기, 한서율의 배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읏...”
그녀는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따뜻한 액체가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재헌 씨, 저 배가 너무 아파요. 유산된 것 같아요... 제발, 병원 좀 데려가 주세요...”
윤재헌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넌 임신도 안 했잖아.”
“아, 아니에요... 제 말 진짜예요. 당신 아이란 말이에요.”
“거기까지 해. 3일 후에 데리러 올게.”
윤재헌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 등을 돌렸다.
한서율은 피 묻은 손으로 바닥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
“제발... 가지 마요. 제발...”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윤재헌의 발소리가 멀어질수록, 그녀의 손끝은 허공만을 붙잡았다.
마침내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 몸은 축 늘어진 채 피 웅덩이 위로 쓰러졌다.
눈앞이 까맣게 번져갔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재헌 씨... 이번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