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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서율, 넌 세린이를 거의 죽게 만들어놓고도 잠이 와?!” 눈을 뜨니 붉게 충혈된 두 눈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태성이었다. 옆에서는 장미영이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서율아... 세린이는 이제 얼마 못 버텨.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니? 송별식 때 일은 다 잊으려고 했는데, 이번엔 정말 세린이를 죽이려 했잖아...” 한서율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더는 그 위선적인 얼굴들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 영상은 제가 올린 게 아니에요. 절벽에서 언니를 민 것도 제가 아니고요. 언니가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토록 감싸기만 하면, 결국 당신들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짝! 따귀 한 대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한서율은 중심을 잃고 반걸음 물러났다. 입가에는 붉은 피가 스며 나왔다. “이 불효막심한 것!” 한태성의 목소리는 분노로 뒤틀렸다. “네 어미도 언제나 남 탓만 했었지. 결국 너도 똑같구나!” “여보, 그만해요... 다 제가 잘못 가르친 탓이에요.” 장미영이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한태성은 거칠게 뿌리쳤다. “너 그렇게 잘났으면, 오늘부터 우리 한씨 가문의 이름을 버려. 오늘부턴 넌 내 딸도 아니다.” 문이 세차게 닫혔다. 창밖에서는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폭우가 쏟아졌다. 한서율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떨리는 어깨 위로,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둠 속에서, 오래전 강지연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서율아, 앞으로는 꼭 잘 살아야 해. 엄마가 하늘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게...” 그녀는 그 약속을 지키려 애써왔다. 밥을 제때 먹고 잠을 제대로 자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하늘에서 강지연이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지금 이 모습은, 분명 엄마를 실망시켰겠지...” 창밖의 비가 더욱 거세졌다. 한서율은 무릎을 끌어안고 눈물 속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언제 옮겨졌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벽난로 속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는 윤재헌이 앉아 있었다. 담배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천천히 공중으로 흩어졌다. “재헌 씨...?” 한서율은 갈라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깼어?” “제가... 왜 여기 있죠?”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기운이 빠져 팔 끝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윤재헌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어제 널 데리러 가려 했는데, 세린의 전시회에 불이 났어. 그림은... 한 점도 남지 않았지.” 한서율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윤재헌의 말 속에 숨은 뜻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다급히 해명했다. “불낸 건 제가 아니에요. 원하신다면 직접 조사해보...” “한서율.” 윤재헌이 말을 끊었다. “세린이는 평생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 그림은 세린이의 생명이었지. 그런 걸 스스로 불태울 리가 없잖아.” “그럼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내려다봤다. “나는 네가 불을 질렀다는 사실, 아버님께도 세린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끝난 건 아니야.” 그의 시선이 매서워졌다. “너도 알아야겠지. 가장 소중한 걸 잃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의 손에 들린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강지연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한서율에게 직접 만들어준 인형이었다. “이건 네가 가장 아끼는 거라며. 이걸 망가뜨리면... 넌 어떤 기분일까?” 윤재헌의 손가락이 천천히 조여들었다. “안 돼요!” 한서율이 일어서려다 소파에서 굴러떨어졌다. 그 인형은 그녀가 열 살이 되던 해, 병든 몸을 이끌던 강지연이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꿰매 만든 것이었다. 그때의 강지연은 이미 바늘조차 제대로 잡기 힘들 만큼 쇠약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한서율의 작은 손을 꼭 쥐여주며 다정히 말했다. “서율아... 엄마는 더 이상 너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 앞으로 엄마가 그리울 때면, 이걸 바라보렴...” 그 후로 한서율은 강지연의 유골 한 줌을 조심스레 인형 속에 넣고 꿰맸다. 그날 이후, 그 인형은 그녀의 전부가 되었다. 매일 밤, 한서율은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하루를 버텼다.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운 밤들을 그렇게 하나씩 견뎌냈다. 그런데 지금, 윤재헌이 그 인형을 불길 속으로 던지려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세린이가 떠나면 모든 게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넌 말을 듣지 않았어.” 그는 팔을 높이 들더니, 인형을 난로 속으로 던져버렸다. “안 돼요!” 한서율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은 채,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팔을 내던졌다. 뜨거운 화염이 피부를 집어삼키듯 스쳤지만 그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듯했다. 그저 불 속에서 이미 새까맣게 그을린 인형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굵은 눈물이 연달아 떨어져 타들어 간 천 위를 적셨다. 윤재헌은 그런 그녀를 한 번도 바라보지 않은 채, 냉담한 얼굴로 거실을 지나쳐 나갔다. ... 그날 밤, 한서율은 인형을 끌어안은 채 울다 지쳐 잠들었다. 날이 밝자, 그녀는 인형을 꼭 쥔 채 캐리어를 챙기고 문을 나섰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젖은 길을 따라 그녀의 발걸음이 묵묵히 이어졌다.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 휠체어 하나가 그녀의 길을 가로막았다. “비켜요.” 한서율의 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있었다. “서율아, 왜 그렇게 성질을 내니?” 한세린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번에 나가면 우리 다시는 못 보겠네. 아버지랑 재헌이는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래요? 잘됐네요. 어차피 언니는 곧 죽을 테니까, 다시는 볼 일 없겠죠.” “내가 죽는다고?” 그녀는 천천히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한서율에게 다가갔다. “그건 그냥 연기야. 재헌이를 붙잡기 위한 거짓말이지. 이제 곧 오진이었다고 발표할 거야. 그럼 재헌이가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녀의 눈빛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리고 하나 더 알려줄까? 너랑 재헌이의 혼인신고서, 가짜야. 법적으로 재헌이 아내는 나거든.” 한세린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한서율이 무너지는 얼굴을 기대했다. 그러나 한서율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캐리어 손잡이를 하얗게 움켜쥔 채, 단 한마디만 남겼다. “그럼 둘이서 잘살아 봐요. 아주 오래오래.” 그녀는 그대로 돌아섰다. ... 도로 옆, 한서율은 캐리어를 곁에 두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와 그녀 앞에 멈췄다.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윤재헌이었다. “정말 가는 거야?”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와이퍼가 유리 위를 스치며 잔 물방울을 흩날렸다. 윤재헌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일... 서로 시간을 좀 가져보자. 네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한서율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인형을 품에 안은 채 택시에 탑승했다. 윤재헌의 차가 점점 멀어져 갈 때,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재헌 씨,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지 말아요’ 택시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저택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졌다. 그곳에는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것과 모든 고통이 함께 묻혀 있었다. “기사님, 공항으로 가주세요.” 두 대의 차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인생길도 완전히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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