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바랜 사랑바랜 사랑
By: Webfic

제4화

그날 오후, 강지수는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떠나기 전 선생님은 그녀를 데리고 근처 사찰로 데리고 갔다. 용한 곳이니 그녀의 행복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싶다면서 말이다. 사찰로 온 그녀는 낯선 스님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스님, 제 이름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요?” 그러자 스님은 웃음을 지었다. “일 년 전에 현재현이라는 분께서 저희 사찰로 160억을 기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도를 하셨지요. 강지수 님께서 행복하고 평안하길 바란다고 하셨지만 부적은 받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곳에 남겨두고 매일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지요.” 스님의 말을 들은 선생님은 아주 기뻐했다. “재현이가 널 아주 생각하는구나. 너희가 잘살고 있다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 강지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간의 행복했던 기억과 현재현의 배신이 뒤섞이면서 그녀에게 고통을 만들어 주었다. 겨우 평온해진 마음에 다시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참으로 우연입니다. 기왕 방문하셨으니 부적을 가져가시지요.” 부적을 받은 그녀는 바로 떠나려고 했지만 스님이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강지수 님! 현재현 님께서 부적을 세 개 부탁하셨으니 전부 받아가시지요.” 강지수는 몸을 돌려 남은 부적도 받았다. 그러나 부적에 적힌 이름을 보았을 때 헛웃음이 나왔다. 그 위에는 박예지와 그 쌍둥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그날 밤 귀가한 현재현은 이미 잠들어 버린 강지수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 그들은 항상 상대가 돌아오기 전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잠들었던지라 먼저 자버린 강지수를 보니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얼른 강지수를 껴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보고 싶었어, 자이야. 비록 몇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내게는 몇 세기 같았어. 만약 네가 내 곁에서 사라진다면 난 분명 살아갈 수 없을 거야.” “... 정말?” 강지수는 작게 중얼거렸다. “참, 자기야. 상의할 게 있어. 아침에 보여준 섬을 무당에게 보여주지 풍수지리가 안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다른 섬을 두 개 매입했는데 그걸 우리 아기한테 주면 안 될까?” 강지수는 눈을 감았다. “마음대로 해.” 어딘가 거리가 느껴지면서도 짜증이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 현재현의 불안감은 더 커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가야, 혹시 나 때문에 화났어?”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곧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내일 오후에 개인 전용기를 타고 해외에 좀 다녀오려고 해. 내가 선물을 예약했는데 직접 받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안 돼. 홑몸도 아닌데 어떻게 15시간이나 비행기에 탈 수 있겠어. 차라리 내가 다녀올게.” 강지수는 이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 내가 직접 가서 받아올 거야. 내가 준비한 선물인데 자기가 받아오면 어떡해.” 그녀의 애교에 녹아내린 현재현이었던지라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알았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다음 날 아침, 현재현은 아침을 준비해 놓고 외출했다. 회사에 일이 생겼다면서 말이다. 그가 나간 후 강지수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드레스룸으로 가 자신이 직접 선물했던 현재현의 옷을 전부 가위로 갈기갈기 찢은 뒤 쓰레기통으로 버렸고 현재현이 자신에게 선물했던 주얼리들은 전부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그녀와 현재현이 모아둔 3년의 추억들과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다시 볼 거라고 했던 사진첩도 전부 꺼내 벽난로에 넣어 태웠다. 서류를 깜빡하고 두고 간 현재현이 다시 돌아왔을 때 마침 벽난로에 불타고 있는 사진첩을 발견하게 되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 그는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불길로 손을 뻗어 겨우 사진첩 하나를 꺼냈다. “자기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강지수를 보았다. “이건 왜 태운 거야?” 강지수는 웃음을 지었다. “그냥. 내가 못생기게 나온 것 같아서 태운 거야. 흑역사는 남기기 싫어.” 그녀는 손을 뻗어 화상을 입은 현재현의 손을 잡았다. “우린 어차피 평생을 함께할 거잖아. 전보다 사진을 더 많이 찍으면 되는데 뭐 하러 불길 속에서 다쳐가면서까지 이걸 꺼낸 거야. 봐, 손이 이게 뭐야. 내가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 걱정 가득한 그녀의 눈빛을 보고 나서야 현재현은 진정할 수 있었고 이내 애교를 부렸다. “싫어. 우리 여보가 호호 불어줘. 그럼 나을 것 같아.” 그의 부하 직원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충격받을 것이었다. 어쩌면 귀신에 빙의된 것은 아닐지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 애교를 부려. 창피하지 않아?” 강지수는 슬쩍 자리를 옮겨 쓰레기통에 버린 옷을 가렸다. 서류를 찾은 현재현은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 “그럼 출근하러 갈게. 점심에 돌아올 거야.”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예지는 또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에덴 호텔. 네 남편 거기에 있어. 오늘 재밌는 구경 시켜줄 테니까 꼭 봐.] 강지수는 침묵했다. 그가 매번 회사로 간다고 말하면서 박예지를 찾아갔다. 게다가 오늘은 그 쌍둥이의 생일이었다. 현재현과 그의 부모님, 친구들은 전부 쌍둥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 호텔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었고 호텔 직원은 박예지를 향해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현재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웃으며 박예지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그의 부모님은 박예지를 향해 그녀에게 보여준 적도 없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지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언제 이런 생일 파티도 열어보겠어. 재현아, 예지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게 잘해줘야 한다. 알겠지?” 현재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언제 예지 눈에서 눈물 나게 했다고 그러세요. 지수에게 해준 걸 전부 다 똑같이 해줬는걸요? 옷이며, 신발이며, 가방이며 전부 두 개씩 준비했다고요.” 자신만 누릴 수 있을 거라고 했던 그의 사랑이 다른 여자도 누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머리가 하얘진 그녀는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행동이 전부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알고 보니 이 사실은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박예지와 그런 사이였던 현재현은 늘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고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선물도 전부 가짜였다. 그녀에게 준 것을 박예지에게도 똑같이 해주었으니까. 게다가 그녀에게 없는 것도 박예지에겐 있었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