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바랜 사랑바랜 사랑
By: Webfic

제5화

호텔 홀로 들어온 그녀는 기둥 뒤에 서서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형, 정말로 이렇게 평생 살려고?” 현준은 미간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지금은 모른다고 해도 언젠가는 들키게 될 거야. 형수님도 분명 이 모든 걸 아시게 될 텐데.” 그러자 현재현은 웃으며 말했다. “난 지수를 사랑해. 하지만 예지는 날 위해 아이들을 낳아줬잖아. 어떻게 예지를 버릴 수 있겠어.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다가 형수님께 들키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현준은 작게 중얼거렸다. “형이 형수님을 배신 한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있잖아. 이런 형수님한테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야. 2년 동안 숨겼는데 아직도 모르는 걸 보면 모르겠어?” 현재현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도 지수한테 못된 짓 하고 있다는 거 알아. 그래서 배로 잘해줄 거야.” 그의 말에 현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보상해 줄 수 있는 거야? 형, 내가 형 동생이니까 말하는 건데. 삼촌 곧 귀국할 거야. 삼촌처럼 꽉 막힌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형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부류인 거는 알지? 내연녀를 숨기고 싶으면 잘 숨겨. 만약 삼촌이 아시게 되면 분명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기둥에 기대고 있던 강지수는 그대로 주르륵 주저앉았다. 연이은 상처에 이미 적응된 듯 더는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역겹기만 했다. 비틀대는 걸음으로 호텔에서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그녀는 결국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낯선 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침대 옆 소파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두꺼운 서류 뭉치를 펼쳐보던 그는 비록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신이 조각한 듯한 얼굴에서는 어딘가 위압감이 느껴졌다. 강지수는 힘겹게 일어나 몇 초간 멍하니 남자를 보고 나서야 누군지 알아보았다. 그는 바로 현재현의 삼촌, 현진우였다. 그는 일 때문에 자주 해외로 갔던지라 얼굴을 몇 번 본 적 없었다. 그저 현재인이 세 살이나 많은 삼촌인 현진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아들을 지극히도 아꼈던 그녀의 시부모님은 현재현이 어떤 장난을 쳐도 혼내지 못했고 그때마다 현진우가 나서서 혼내고 했다. 현재현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우리 삼촌은 꽉 막힌 사람이야. 무슨 일을 하든 진지하고 꼭 자기 규칙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 “깼어?” 남자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네가 유산했다고 의사가 그러던데. 거기다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받아서 쓰러진 거라고 했어.” 그는 강지수를 향해 다가왔다. “네가 유산했다는 거, 재현이도 알아? 알았다면 분명 미쳐있었을 텐데. 절대 네가 길가에 혼자 쓰러지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 강지수는 한참 침묵한 뒤에 입을 열었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제가 유산한 일은 현재현에게 비밀로 해줬으면 해요.” 현진우가 협조해 줄 생각이 없자 그녀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발요.” 그녀의 모습에 현진우는 당황하고 말았다. 동시에 둘 사이에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음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지수는 분명 이 사실을 현재현에게 말했을 테니까. 하지만 애원하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결국 숨겨주기로 약속했다. 그는 사람을 불러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현도 돌아왔다. “자기야, 점심은 뭐 먹고 싶어? 내가 만들어 줄게.” 행여나 주방장이 그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들까 봐 그는 직접 음식을 만들려고 했다. 전부터 그는 강지수를 위해 삼시 세끼 전부 직접 차려주었다. 그러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주얼리를 꺼냈다. “전에 주문한 게 오늘 도착했더라고. 자기야, 마음에 들어?” 강지수는 자신의 앞에 있는 그의 선물을 보았다. 오늘 박예지에게 준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줄곧 자신만 편애할 거라고 생각했던 현재현은 뒤에서 몰래 하나 더 준비해 박예지에게도 챙겨주고 있었다. “필요 없어. 나 숲속 쉼터로 가고 싶어.” 숲속 쉼터는 5년 전 현재현이 강지수를 위해 만들어 준 정원이었다. 그곳에는 둘만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쉼터에서 현재현은 그녀에게 17번이나 고백을 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 스킨쉽과 첫 키스를 했었다. 그가 프러포즈를 준비한 곳도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그녀를 향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었다. 다만 시내와 거리가 멀었던지라 결혼한 뒤로 그곳에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점심 12시였고 오후 3시면 개인 전용기를 타고 영원히 이곳을 떠날 예정이었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추억이 가득 담긴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현재현은 다소 당황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박예지가 그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하면서 고집을 부렸기에 그곳의 열쇠를 박예지에게 준 상태였고 오늘은 두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점심 먹고 가자.” 그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몰래 박예지에게 문자를 보내 그곳을 비우라고 했다. 오후 1시, 두 사람은 숲속 쉼터로 왔다. 들어오자마자 강지수는 어딘가 이상해졌음을 바로 눈치챘다. 정원의 장미는 전부 백합으로 바뀌었고 연한 초록색의 커튼은 어느새 분홍색의 커튼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거실에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 척 계속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방에는 그녀와 현재현이 찍었던 사진첩들이 몇 권 있었기에 태울 생각이었다. 남겨 봤자 역겹기만 하니까. 사진첩을 연 그 순간 그녀는 경직되고 말았다. 사진첩에는 그녀와 찍은 사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전부 현재현과 박예지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사진도 있었다. 네 사람이 화목하게 꽃밭에서 앉아 찍은 사진, 해외여행 간 사진, 열기구를 탄 사진... 등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전부 현재현이 그녀를 데려간 곳이었다. 그는 그녀와 추억이 담긴 곳에 박예지도 똑같이 데려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동안 그는 다른 여자를 데리고 직접 그녀와 추억이 담긴 곳에 새로운 추억을 덧씌웠다. 강지수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지자 현재현은 바로 달려왔다. “여보, 괜찮아?” 강지수는 앨범을 확 닫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집으로 가고 싶네.” 그녀는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때 현재현의 핸드폰이 울리더니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자기야,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거실에서 기다려줘, 응?” 강지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거실로 갔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올라왔다. 화장실 밖에 서니 현재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했잖아!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건데!” “그냥. 너랑 짜릿한 걸 해보고 싶었어.” 이때 갖은 교태로 아양을 부리는 박예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에 네 신혼집 침대에서 결혼사진을 보면서 했었잖아. 이번에는 강지수가 거실에 있고 더 짜릿할 것 같은데, 안 그래?” 현재현은 어느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요물 같긴!” 그는 치밀하게 수도까지 틀어놓았지만 그 소리는 완벽하게 가리지 못했다. 문밖에 서 있던 강지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한테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 왜 이렇게 변한 거지?' ‘꼭 진흙탕 속에 핀 양귀비 같네. 눈길을 끌지만 가까이 가면 썩은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는데 사랑에 눈이 멀어 눈치채지 못한 건가?' 그녀는 예전에 현재현이 처음으로 자신을 데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의 친구들은 전부 재벌이었고 겉으로는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것 같았지만 뒤에서는 남몰래 현재현을 한 여자에게만 올인하는 멍청이라며 욕했다. 그때마다 현재현이 그녀에게 말했다. “난 쟤들과 달라. 평생 너만 사랑할 거야.” 그런데 지금 보니 다를 게 없었다. 전부 똑같이 악취가 나는 사람들이었고 그저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강지수는 피식 웃으며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납치당해 생판 모르는 남자와 살게 된 것이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매일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녀가 13살이 되던 해 결국 그 산만 가득했던 시골에서 도망치게 되었고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친아버지를 감방에 보내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는 키운 은혜도 모르는 불효녀라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강지수의 존재가 강간당한 증거가 되어 그녀의 어머니를 갉아먹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강지수는 당연히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고 모든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18살이 되던 해 현재현이 그녀의 생활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그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씨가 되어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고 다정한 진심으로 그녀의 상처를 희석해 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사랑을 주면서 그녀에게 다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배신한 것이다. 그것도 그녀가 제일 행복할 때, 제일 중요한 이 시기에 그녀를 향해 엄청난 상처를 만들어 주었다. 이 상처는 너무도 깊어 아마 평생 아물지 않을 것이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