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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허지현을 살리기 위해, 윤이슬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금을 끌어모았다. 전세기를 띄워 허지현을 해외로 긴급 이송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녀가 숨을 돌리기도 전에 회사 비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수익의 절반을 책임지던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배씨 가문에서 통째로 가로챘다는 소식이었다. 윤이슬의 심장이 서늘하게 식어 내려갔다. 그 계약이 날아가면 허지현의 이후 치료비는 감당할 길이 없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녀는 곧장 배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그는 태연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이슬아. 나랑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희정이한테도 사과해.” 윤이슬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쇳소리 같은 목으로 대답했다. “좋아.”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타고 있던 차가 폭발했다. 의식을 잃기 전, 윤이슬이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살갗을 녹이는 듯한 끔찍한 화염의 고통이었다. 죽음이 목덜미를 움켜쥐는 그 찰나,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불길에서 끄집어냈다. 사람들의 비명, 구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의료진들의 다급한 대화는 수술실 문이 닫히는 순간 모두 희미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식이 가물거리는 찰나, 윤이슬은 배성준의 친구가 다급하게 내뱉는 목소리를 들었다. “성준아, 윤이슬이 사과하겠다고 했다며. 그런데 왜 차를 폭발시킨 거야?” 배성준의 말투는 차갑게 건조했다. “그냥 가벼운 경고일 뿐이야. 희정이는 그 누구보다도 외모를 중시하는데 최근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온종일 울고불고 난리였지. 윤이슬도 그 기분을 똑같이 느껴봐야 하지 않겠어?” 친구는 경악하며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윤희정은 그날 바로 네 전담 의사들이 치료해 줬잖아. 지금은 흉도 거의 없고. 게다가 먼저 손을 쓴 사람이 윤희정이라며. 윤이슬은 전신 화상에 회사도 무너지고, 허지현도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너 설마...” “됐어, 그만해.” 배성준의 목소리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단칼이었다.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할 거야.” ... 윤이슬이 다시 눈을 뜬 것은 5일 뒤였다. 온몸이 붕대에 감겨 있었는데 진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밀려온 분노가 살을 파고들 듯 고통을 불러왔다. 그때, 배성준이 도시락을 든 채 병실에 들어섰다. 윤이슬은 잡히는 대로 모든 것을 그의 쪽으로 던졌다. “꺼져.” 배성준은 묵묵히 다가오더니 이마에 흐른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내가 잘못했어. 그때 네 말대로 헤어지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지.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경쟁사 놈들이 너를 노린 거야. 네가 다친 것도 다 그놈들 짓이야. 희정이도 사과했어. 그날 너한테 보낸 사진은 인터넷에서 저장한 거라더라. 그러니까 이슬아, 이제 화 풀어. 응?” 윤이슬은 배성준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었다. 이후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성준은 과거 오직 윤이슬에게만 마음을 쏟았던 혁이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는 윤이슬에게 직접 약을 먹였고, 또 매일 강원도에서 안개꽃을 공수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윤이슬에게 ‘혁이’라는 사람은 지난 4년간의 사랑과 함께 이미 사라진 존재일 뿐이었다. 퇴원 당일, 배성준은 레스토랑 한 층을 통째로 예약해 윤이슬의 퇴원을 축하했다. 남자는 다정하게 윤이슬의 스테이크를 잘라 건네며 따스하게 웃었다. “이따 식사 끝나면 예약해 둔 웨딩드레스 피팅하러 같이 가자.” 하지만 그 순간, 레스토랑 문이 벌컥 열리더니 윤희정이 울음 범벅 얼굴로 달려와 윤이슬 앞에 무릎을 꿇었다. 흰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눈물로 얼굴을 흠뻑 적신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언니가 나 싫어하는 거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가정부를 매수해 엄마 음식에 약을 탈 수가 있어? 엄마 지금 백혈병 걸렸다고!” 윤이슬은 코웃음을 쳤다. “네 엄마가 남의 가정을 망쳤으니까 벌받은 거겠지. 그런데 그게 왜 내 탓이야?” “그만해. 아줌마가 모든 걸 인정했어!” 윤희정은 소리를 지르더니 지문이 찍힌 자백서 한 장을 던져 보였다. 거기에는 윤이슬이 이 모든 일의 배후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변명하지 마. 우리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언니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골수를 기증해.” 그 말을 들은 순간, 윤이슬은 이것 역시 윤희정 모녀가 짜놓은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자리를 뜨려던 순간, 배성준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는 의심이 깔려 있었다. “희정이는 내 앞에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사람이 할 말을 잃으면 웃음이 먼저 나오는 법이다. 윤이슬은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할 말 있으면 경찰서 가서 해. 어쨌든 골수는 절대 못 줘!” 그런데 그때, 윤희정은 갑자기 자백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더니 와인병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 “난 이미 아빠의 사랑 절반을 언니한테 빼앗겼어. 그런데 이제 엄마까지 죽게 하려는 거야? 언니가 나한테 술병으로 친구 머리 찍었다고 누명 씌웠잖아. 그래, 좋아. 언니도 나 쳐.” 그러면서 와인병을 자기 머리 위로 세게 내리치려 했으나 배성준이 주저 없이 손으로 막아섰다. 그 순간,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배성준의 손등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윤희정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피를 본 윤희정의 얼굴은 핏기 없이 새하얗게 질렸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희정아.” 배성준은 완전히 무너진 얼굴로 윤희정을 안아 들고 밖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윤이슬 옆을 지나칠 때 걸음을 멈추더니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잘못한 만큼 대가를 치러야 해.” 그 말을 남긴 배성준은 윤이슬과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그 뒤로 이틀 동안 배성준은 꼼짝없이 윤희정 곁을 지켰다. 윤이슬은 그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걸 알고 시간을 다투며 증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 그녀에게 도움을 줬던 은인을 찾는 데 성공했다. 둘은 불타버린 보육원 근처의 작은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료를 넘겨받은 뒤, 윤이슬은 그에게 평생 편히 살 만큼의 돈을 건네고 헤어졌다. 하지만 윤이슬이 서점을 나서 차로 향하려던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의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그녀의 의식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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