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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지연은 긴장했다. 저 술에 약을 탔는데 서현우가 마신다면... 그녀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니 서현우는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얼굴에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저 위협적인 눈동자를 탐색하고 도발하듯 슬쩍 위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리기만 했다. 윤소율이 투정 부리듯 말했다. “서 대표님은 제 술 마시기 싫은가요?” 서현우는 차갑게 입술을 비틀더니 갑자기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한지연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해 옆으로 주저앉으며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녀는 급히 임채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큰일 났어. 채은 씨... 서 대표님이 약을 탄 술을 마셨어!] 최군이 말했다. “소율 씨, 서 대표님께 술을 따랐으니 우리에게도 따라줘야죠!” 윤소율이 가볍게 웃으며 일어나려는데 서현우가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다시 품에 안았다. 자기 사람이라고 선포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그의 사람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일동 침묵에 빠졌고 한지연이 갑자기 말했다. “언니, 그래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대표님은 임자 있는 분이라 선을 지켜야 해요.” “우리가 다 입 다물면 밖으로 새어 나갈 리가 있겠어? 남자는 다 그래.” 최군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너무 더운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최군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더우면 옷을 벗으면 되잖아!” 이내 부하에게 서류 가방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더니 그 안에서 현금을 한 뭉치 꺼내서 테이블에 던졌다. “옷 한 벌 벗으면 천만원.” 말하며 윤소율을 돌아보는 눈동자에 탐욕이 가득했다. 한지연은 한눈에 최군이 윤소율을 노린다는 걸 알아차렸다. 옷 한 벌 벗으면 천만원을 준다니! 현장에 있던 여성들은 모두 마음이 흔들려 눈치만 보았다. 전부 연예계 발을 들인 연예인이었고 한지연만큼은 아니지만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스타들이었다. 연예 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사람들일수록 창피함 따위 모르는 법이다. 한 여자가 먼저 일어섰다. “여기까지 왔는데 뭘 고상한 척 굴어요? 오늘 밤 대표님들께 잘 보여서 나쁠 게 없잖아요. 진짜 돈 천만원이라고요!” 말하며 그녀가 먼저 외투를 벗고는 자랑스럽게 천만원을 가져갔다. 누군가 솔선수범하자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지연도 일어섰다. 고작 끈 드레스와 니트 가디건 한 벌만 입고 있던 그녀는 테이블 위의 돈을 빤히 보다가 과감하게 가디건을 벗고 천만원을 가져갔다. 점점 자리에 있는 여자들이 하나둘 일어났고 일부 여성들은 드레스 한 벌만 입거나 아예 모두 벗어 버렸다. 잠시 후 테이블 위의 현금은 모두 사라졌다. 장내에서 윤소율만 옷을 제대로 입었고 다른 여성들은 대부분 옷을 벗어 버렸다. 한지연도 나름 연예인이라고 그나마 치마 한 벌은 남겨두고 있었다. 최군이 말했다. “왜 더 벗는 사람이 없지?” 그가 윤소율을 주시했지만 그녀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최 대표님, 돈이 다 사라졌는데 뭘 더 벗어요?” “하하하, 돈밖에 모르는 건가?” 최군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번 달에 안봉희 감독과 영화 협상을 진행 중인데 제일 먼저 벗는 사람에게 여주인공 자리를 주지!” “어머, 최 대표님, 이건 사람 놀리는 거잖아요!” 한 여배우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희에게 남은 옷이 없으니 그 자린 지연 씨가 가져가겠네요.” 한지연은 입술을 깨물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어나 마지막 치마를 벗어 던지고 유혹적인 자태로 엉겨 붙었다. “최 대표님, 이러면 되나요?” “어떨 것 같은데? 치마 한 벌로 여주인공 자리를 바꾸기엔 부족하지!” 한지연은 순간 당황했다. 최군은 윤소율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윤소율 씨, 안봉희 감독의 대작인데 여주인공 역할에 관심이 없나요?” “최 대표님,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들어온 영화 제의가 너무 많아서 시나리오를 읽을 시간도 없어요. 안봉희 감독님 작품이라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네요.” 최군의 얼굴이 굳어지며 민망함이 극에 달했다. 한지연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려 안봉희의 영화인데 윤소율은 뒤로 미룬단다. ‘이 정도는 무시하는 건가?’ 서현우가 갑자기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의 손이 어깨를 스치자 뜨거워진 손끝을 느낄 수 있었다. 윤소율이 그의 팔을 잡으니 살갗이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이 술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남자의 숨소리는 약간 거칠었고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각진 턱선이 경직되어 있었다. “대표님, 어디 불편하세요?” 윤소율은 일어나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랑 같이 가요.” 클럽 위층에 스위트룸이 있다. 최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 대표님, 왜 그래요? 겨우 두세 잔 마셨을 뿐인데 벌써 술에 취하신 건 아니겠죠?” 서현우의 눈빛 한 번에 최군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숨결이 다소 흐트러졌지만 여전히 이성을 유지하며 윤소율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힘이 너무 세서 윤소율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대표님, 아파요. 살살 잡아요.” 서현우는 차갑게 웃으며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방 밖으로 끌어냈다. “무슨 짓이에요?” 윤소율은 그에게 끌려가며 휘청거렸다. 서현우는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돌아서서 그녀의 작은 얼굴을 움켜쥐더니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옭아맸다. “당신인가?”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술에 손을 댔어?” 서현우는 일찌감치 술의 이상함을 눈치챘다.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속에서 이상한 반응이 일어났다. 이것은 정상적인 술이 아니었다. 윤소율은 가볍게 웃으면서 부인하지 않았다. “대표님께서 어떻게 놀고 싶냐고 물으셨죠?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드세요?” 서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고 거대한 몸으로 모든 빛을 가렸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도 그의 우아한 목선에 불꽃 같은 무늬가 가슴까지 이어지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서현우는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노려보았고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졌으며 차가운 눈동자에서 위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남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부드러운 미소인데 소름 끼치는 한기가 느껴졌다.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놀아주지.” “서현우 씨, 당신...” ... 3층 스위트룸. 띠링. 방 키를 스캔하자 문이 벌컥 열렸다. 윤소율은 남자의 손을 힘차게 뿌리쳤다. “서현우 씨, 미쳤어요?” 그녀는 계속 뒤로 물러났다. 달빛 아래 남자의 차가운 얼굴은 각진 선만 드러낸 채 얇은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입술 얇은 남자가 매정하다고 하던데... 윤소율은 그의 차가운 눈빛을 바라보며 5년 전 그가 보여줬던 잔인함을 떠올렸다. “나한테 손대지 마!” 이윽고 남자가 그림자처럼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잡았고 어쩔 틈도 없이 뜨거운 몸에 밀려 문에 밀착했다. 남자는 여자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눈빛에는 심장을 떨리게 하는 소유욕이 담겨 있었다. “나랑 놀겠다면서요? 왜, 못하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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