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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내가 못 할 것 같아?

권지호가 떠나고 30분 뒤,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권지호가 물건을 두고 간 줄 알고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었지만,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권지호가 아니라 유승현이었다. 그는 고급 맞춤 정장을 입고 핏빛처럼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든 채 오만하고 방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대스타.” 그는 발로 문을 괴더니 강제로 밀고 들어왔다. 순간 지독한 코롱 향수가 집 안의 소독약 냄새를 덮어버렸고 나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당장 나가!” 나는 현관에 있던 화병을 집어 들고 떨리는 손으로 그를 겨누었다. 하지만 유승현은 나의 위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서늘한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혀를 찼다. “겨우 이런 데서 살아? 고작 30평? 우리 집 화장실보다도 작네.” 유승현은 식탁 앞으로 걸어가더니, 불쾌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쓱 문질렀다. “그 가난뱅이 법의학자랑 사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듣자 하니 월급이 고작 몇백만 원이라며? 그걸로 수분 크림 한 통이나 살 수 있겠어?” “유승현,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나는 뒤로 물러나다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등에 벽이 닿고 말았다. 유승현은 내게 다가와 턱을 움켜쥐었는데, 뼈를 으스러뜨릴 듯한 힘이 느껴졌다. “내가 뭘 원하는지, 네가 모를 리 없잖아?” 유승현은 고개를 숙여 내 얼굴에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심지유, 놀 만큼 놀았으면 이제 집으로 돌아와야지. 그 사건, 아직 취하 안 했거든.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네 그 법의학자 남편은 직장을 잃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너랑 같이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몰라.” “네가 감히!”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못 할 것 같아?” 유승현은 잔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오늘 밤 10시, 애슐리에서 기다릴게. 내가 보낸 그 빨간 구두 신고 나와. 만약 안 오면 내일 헤드라인은 ‘모 법의학자의 아내가 거액의 자금세탁 연루, 남편은 알고도 묵인한 공범’이 될 거야.” 말을 마친 그는 손을 놓고는 장미 꽃다발을 바닥에 던져 거칠게 짓밟았으며 피처럼 붉은 꽃잎들이 바닥에 짓이겨졌다. 유승현이 떠난 뒤 나는 벽을 타고 주저앉아 짓밟힌 꽃들을 바라보았고 이내 절망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유승현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기에 내게 선택지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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