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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지금 네가 나랑 조건을 따질 처지야?

밤 9시, 나는 창백한 안색을 가리기 위해 화장을 진하게 했다. 그리고 그 빨간 구두로 갈아신은 뒤, 권지호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저녁에 동창 모임이 있어서 좀 늦을 것 같아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요.] 메시지를 전송하자마자 휴대폰 전원을 끄고 택시를 잡아타고 애슐리로 향했다. 그곳은 서울에서 가장 이름난 유흥가이자 유승현의 구역이었다. 담배 연기와 소음으로 가득한 방 안, 유승현은 중앙 소파에 앉아 양옆에 여자들을 끼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본 그는 곁에 있던 여자들을 밀쳐내고 비어 있는 옆자리를 툭툭 쳤다. “자, 우리 대스타님 앉게 자리 좀 비워드려.” 주변에 모여 있던 그의 친구들은 일제히 야유 섞인 환호를 보냈다. “오, 이 사람이 바로 심지유야? 실물이 TV에서 보던 것보다 더 끝내주는데.” “아깝네, 하필이면 시체나 가르는 놈이랑 살다니. 재수 없게 말이야.” “그 법의학자 놈은 완전 나무토막처럼 무미건조하다면서? 우리 아름다운 심지유 씨, 아주 외로웠겠어?” 귀를 파고드는 저질스러운 농담들이 마치 파리 떼처럼 들끓었다.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유승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지는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유승현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원하는 건 다 가져왔어. 지호 씨는 건드리지 마.” 나는 가방에서 미리 서명해 둔 ‘노예 계약서’를 꺼냈다. 향후 10년 동안 나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는 불평등한 전속 계약서였다. 하지만 유승현은 계약서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는 위스키를 가득 따른 잔을 내밀며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해? 일단 한 잔 마시면서 옛이야기나 좀 하자고.” 도수가 아주 높은 위스키가 잔에 가득 차 있었다.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경호원 두 명이 내 퇴로를 막아선 상태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독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오르게 했고 사례가 들려 눈물이 나올 뻔했다. “좋아! 화끈하네!” 유승현은 박수를 쳤고 눈빛은 더 추악하게 변했다. “자, 여기 한 병 더. 이것까지 다 마시면 사인해 줄게.”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양주 한 병을 가리켰다. 이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유승현, 적당히 해.” “적당히? 심지유, 지금 네가 나랑 조건을 따질 처지야?” 순간 유승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더니 내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 소파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디서 정숙한 척이야? 그 법의학자 놈이랑 2년이나 굴러먹었으면서 몸이 닳기라도 했어?” “이거 놓으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탁자 위의 술병을 집어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챙그랑! 하지만 유승현의 반응이 더 빨랐다. 그는 병을 피하며 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순간 불꽃이 튄 듯 눈앞이 번쩍였고 입술 끝이 터지며 비릿한 피가 배어 나왔다. “호의를 베풀어줬더니 아주 기어오르는구나!” 유승현은 바닥에 침을 뱉더니 내 머리채를 움켜쥐었고 억지로 입을 벌려 술을 들이부으려 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구경거리라도 난 듯 지켜볼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나는 절망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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