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유호준이 나직하게 비웃으며 말했다.
“유씨 가문은 아직 내 손아귀에 있지.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어! 사흘 뒤에 네 아버지 장례식에서 내가 직접 네 억울함을 풀어주마.”
“내가 있는 한 네가 떠나든 머물든 감히 아무도 토 달지 못할 거야.”
강다윤은 아버지의 싸늘한 시신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병원을 떠났다.
유호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현재 유원 그룹의 실권자였던지라 너무 바빠서 아내와 아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녀는 그가 약속을 지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떠난다면?
결국 그녀는 다시 유하진 모자의 손에 떨어질 것이었다.
게다가 유하진 모자와 임지영은 아버지 강명훈의 죽음을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그 복수는 그녀가 직접 해야 했다.
강다윤의 눈빛이 확고해지고 택시 운전사에게 방향을 틀어달라고 한 뒤 곧바로 화려한 빌딩 앞에서 내렸다.
그곳은 바로 임지영 집안의 회사였다.
유하진 덕분에 강다윤은 임씨 가문의 내막을 꽤 잘 알고 있었다.
임지영은 임씨 가문의 귀한 막내딸로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제멋대로 자랐다. 먹고 놀기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 틈에 가업을 사실상 차지한 사람은 임씨 가문의 혼외자식, 임재현이었다.
임재현은 겉보기엔 온화하고 예의 바르며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는 남자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다윤은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을.
로비 직원이 대표실로 전화를 걸더니 그녀를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는 곧 32층에서 멈췄다.
강다윤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임재현은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어 있었다. 느슨하게 풀린 셔츠 깃과 손에 든 와인잔, 그리고 그녀를 향한 비웃는 미소.”
“생각 정리는 끝났나?”
그의 한마디에 강다윤의 기억이 2년 전으로 되감겼다.
그날은 유하진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이었고 손님이 아주 많았다.
강다윤은 밤바람을 쐬러 정원으로 나갔다가 멀리서 호숫가에 서 있는 임재현을 보았다.
그때의 임재현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수많은 일을 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모욕만 당했다.
예의상 강다윤은 그를 홀로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던 순간 임재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죽여. 깨끗하게 처리하면 잔금은 두 배로 주지.”
강다윤은 놀라 숨을 내뱉었고 임재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서늘하고도 위험했다.
그녀는 공포를 억누르며 더듬거렸다.
“저, 저기서 케이크 자른대요. 어, 얼른 가세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임재현의 눈동자는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를 훑어보고 있었다.
“넌 정말 착하군. 그 인간에게 그렇게 맞아 온몸이 상처투성이면서 나를 걱정하러 오다니.”
“그래서 어떻게 해줄까? 내가 그놈 죽여줘?!”
강다윤은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 하지만 공짜로 도움을 바라지는 않아요. 대신 제가 임지영이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를 드릴게요. 그걸로 임씨 가문을 무너뜨리는 데 쓰세요.”
임재현은 손짓으로 그녀를 앉게 한 뒤 한 손으로 소파를 짚고 몸을 숙여 그녀를 품에 안듯 다가가 말했다.
“직접 복수하는 그 짜릿함, 느껴보고 싶지 않아?”
강다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기분이었다. 두려움과 거부감이 뒤섞인 눈빛을 본 임재현은 피식 웃어버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법을 지키는 사람이야. 오히려 네가 죽이겠다고 해도 난 반대야.”
강다윤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한 모든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임재현은 다시 제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널 유학 보내줄게. 3년 뒤에 돌아와 내 비서가 돼. 그러면 내가 유하진 모자를 무너뜨리게 도와줄게.”
강다윤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먼저... 아버지 유골함부터 찾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