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화

“우리 이혼해.” 윤라희는 평생 단 한 번도 남편에게 불륜을 의심받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차도겸은 화도 내지 않았고 추궁도 하지 않았으며 단 한마디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돌아온 건 그저 이혼하자는 냉정한 한마디였다. 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피가 죄다 굳어버린 듯했고 윤라희는 눈앞의 남자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정말 나를 조금도 믿지 않는 거야?’ “도겸아, 나 너 배신한 거 아니야. 설명할 수 있어...” 어젯밤 윤라희는 절친인 하유선과 단둘이 나가서 과일주스를 마셨고 어지러워서 잠깐 호텔방에 들어가 쉰 것뿐이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눈앞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설명?” 차도겸은 싸늘하게 웃었다. “윤라희, 나 아직 눈이 멀지 않았어.” 조각처럼 완벽한 얼굴, 날카로운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눈빛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 같았고 윤라희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눈매가 서늘하게 좁혀졌다. 그리고 차도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보다도 더 차갑고 잔혹했다. “오늘 안으로 이혼 서류가 네 손에 들어갈 거야.” 그 말과 함께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는 그녀를 쳐다보는 것조차 역겹다는 듯한 경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윤라희는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고 차도겸이 등을 돌리는 순간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눈빛은 간절했고 목소리는 떨렸다. “도겸아, 정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입술이 얇은 남자는 정이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7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윤라희는 그걸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껴왔다. 하지만 차도겸이 아무리 냉정하고 차갑더라도 윤라희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차도겸은 고개를 돌려 혐오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거칠게 뿌리쳤다. “꺼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지지 마.” 거센 힘에 순간 균형을 잃은 그녀는 침대 모서리에 이마를 세게 부딪혔다. 차도겸의 혐오 가득한 눈빛에 윤라희는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애써 삼켰다. 그런데 왜인지 갑자기 웃음이 났다. 아니, 웃다 보니 눈물이 났다. “차도겸! 우리가 부부로 지낸 시간이 얼만데... 너한텐 내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여?” 차도겸은 조소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 차가운 시선에 윤라희는 다시 얼어붙었다. “그럼 아니야? 2년 전에 네가 날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 벌써 잊었어?” 그가 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처럼 윤라희의 가슴에 꽂혔다. “나한테서 원하는거 얻지 못하니까 이번엔 똑같은 수법으로 서씨 집안에 붙어보려고? 윤라희, 넌 진짜 역겨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윤라희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침대를 짚은 두 손은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이마를 부딪힌 자리는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그 고통보다 더 참기 힘든 건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절망스럽게 눈을 감았다. 이윽고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랬구나... 넌 날 그렇게 보고 있었던 거구나.’ 세 살에 데뷔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가장 빛나는 아역 배우로 주목받았고 열일곱 살에는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미래는 누구보다 찬란했고 그 누구보다 정점에 가까웠다. 하지만 열여덟 번째 생일날 그 모든 게 무너졌다. 꿈처럼 그리던 사람, 차도겸의 곁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설명하려는 찰나 기자들이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호텔 직원은 윤라희가 차도겸에게 일부러 덫을 놓았다고 말했고, 기자들은 그녀가 직접 연락해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했다며 스스로 스캔들을 만들어 최고 재벌 차씨 가문에 들어가려 했다고 몰아세웠다. 윤라희는 결단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누구도 믿지 않았다. 모두가 손가락질했고 전 국민이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차도겸 역시 윤라희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계산적이고 천박한 여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차성 그룹의 압박은 거세졌고 그녀를 향한 악의적인 루머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갑질, 신인 교체, 대역 사용, 성형설, 스폰서설 무수한 비난 속에서 윤라희의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교수였던 아버지는 평생을 바르고 곧게 살아온 분이었다. 하지만 딸이 그런 파문에 휘말린 걸 끝내 견디지 못하고 학교 옥상에서 몸을 던져 윤라희의 눈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머니는 그 충격에 심장병이 도졌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윤라희의 집안은 산산이 부서졌다. 열여덟, 가장 빛나야 할 나이에 윤라희는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 갇혔다. 부모님을 따라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큼 모든 걸 잃었다고 믿던 그때 그녀는 차도겸의 아이를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씨 집안은 가문의 피가 밖으로 새는 걸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렇게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걸 잃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희망 하나로 버텼다. 연예계에서 쫓겨나고 세상에 손가락질받아도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외로이 남겨져도 그래도 차도겸을 사랑했기에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괜찮다고 믿었다. 하지만 몇 날이 지나지 않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아이를 잃었다. 차도겸은 그녀를 혐오했고 차씨 가문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녀를 미워했다. 아이까지 잃은 윤라희는 그 집에서 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럼에도 차도겸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모든 걸 견뎠다. 참 어리석게도 노력하면,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그의 마음도 열릴 거라 믿었다. 하지만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은 오늘 그 믿음은 무참히 무너졌고 그때의 악몽이 다시 시작되었다. 눈을 뜨자 옆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차도겸은 이번에도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고 단 한마디 말로 그녀를 다시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윤라희는 가슴을 그러쥐었다. 마치 심장에 칼이 박힌 것처럼 온몸이 떨렸고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짝사랑 4년에 결혼 생활 2년까지 도합 6년이었다. 차도겸을 위해 연기를 포기했고 찬란한 명성을 버렸으며 날개를 꺾고 자존심을 꺾었다. 결국엔 존엄까지 내던져 스스로조차 혐오스러울 만큼 비참해졌다. 그렇게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바친 마음의 대가는 단 한마디였다. ‘윤라희, 넌 진짜 역겨워.’ “하... 하하” 눈물과 함께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보다 더한 실패가 또 있을까. “쳇, 불쌍하긴.” 그때 옆에서 한 남자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라희는 증오로 가득 찬 눈을 들어 남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눈빛은 막다른 길 끝에 몰린 사람처럼 온통 원망과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서경민! 나랑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런 짓을 해?” 셔츠 단추를 채우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이어진 웃음엔 뻔뻔함이 가득했다. “우리 여신님이 너 때문에 기분 상했대서 말이야. 뭐, 너한텐 오히려 잘된 일 아니냐? 어차피 명목뿐인 결혼 생활이라며.” 서경민의 시선은 거리낌 없이 윤라희를 훑었다. 역시 한때 연예계를 휩쓸던 최고의 미인답게 엉망이 된 얼굴로 우는데도 기가 막히게 예뻤다. 하지만 아쉽게도 차도겸의 여자라 그가 아무리 원해도 감히 진짜 손댈 순 없었다. 그는 재킷을 들어 어깨에 툭 걸치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차도겸이 어떻게 호텔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인터넷 들어가 봐. 내가 준비한 선물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서경민은 유유히 사라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달은 순간 윤라희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가슴속에서 피어오른 공포가 그녀를 뒤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제발 아니길...’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낸 그녀는 숨을 삼키며 웹페이지를 열었다. 그 순간 휴대폰 화면 속 오늘의 실시간 검색어가 눈에 들어왔다. 귀가 멍해지고 가슴이 턱 막혔다. 혼이 빠져나가는 듯 온몸이 얼어붙었다. [윤라희 서경민 호텔 밀회] [윤라희 불륜] [차도겸 윤라희 파경 위기]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을 장악한 것은 그녀와 서경민이 함께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이었다. 밤새 찍힌 수십 장의 사진들이 쏟아졌고 댓글 창은 이미 혐오와 조롱으로 뒤덮였다. 읽기도 민망한 욕설이 화면 가득 도배되어 있었고 그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윤라희가 서경민이랑 호텔 갔다고? 유부녀 아니었어?] [재벌가 며느리가 불륜? 와, 미쳤다 진짜.] [쟤 원래 유명했잖아. 2년 전에 차도겸 대표한테 함정 파서 임신쇼로 억지 결혼했다며? 워낙 못된 짓만 하니까 애도 결국 유산한 거지ㅋㅋㅋ] [그냥 차에 치여 죽어버려. 예전에 내가 왜 너 같은 걸 좋아했는지, 생각만 해도 토 나온다.] 그 입에 담지도 못할 악플들을 보는 순간 윤라희는 마치 2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수천 명의 비난이 쏟아졌던 그해 여름, 악몽처럼 짙고 어두웠던 나날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그 모든 기억이 거센 파도처럼 윤라희를 삼켜버렸다. “윤라희, 당장 연예계에서 꺼져!” “너 이런 사람이었어? 진짜 천박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넌 우리 윤씨 가문의 수치야. 난 너 같은 딸 둔 적 없다...” 그리고 학교 옥상에서 떨어지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핏빛으로 물든 바닥, 눈을 의심케 했던 참혹한 장면. “꺄악!” 윤라희는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을 벽 쪽으로 던졌다. “아니야! 난 그런 짓 한 적 없어! 차도겸 침대에 올라가지 않았어! 진짜 아니라고... 왜 아무도 날 안 믿어! 왜...” 절망에 빠져 숨조차 가빠오던 그때 문밖에서 하이힐 굽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Previous Chapter
1/294Next Chapter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