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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강인아가 연행되어 들어간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백세헌이 직접 와서 보증을 섰다. 접수를 맡은 경찰이 물었다. “백세헌 씨, 시비를 일으킨 자와 사적으로 합의하시겠습니까?” 백세헌은 멀쩡한 강인아를 한 번 훑어보고 간단히 대답했다. “네.” 경찰이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호텔의 손실은 초보적인 추산으로 천만 단위 이상입니다...” 강인아는 손안에서 펜을 굴리며 말했다. “얼마 모자라는데요? 내 남편한테 가서 받아요.” 백세헌의 미간이 아주 살짝 씰룩였고, 강인아를 보는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보석 절차를 마친 뒤, 두 사람은 앞뒤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백세헌이 강하게 다가서며 강인아를 모서리로 몰았다. “당신이 벌인 사고 누가 뒷감당하지?” 키가 최소 188cm는 되는 그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자, 보이지 않는 압박이 강인아의 심리를 짓눌렀다. 이 남자는 얼굴만 비상한 게 아니라 기세도 위험했다. 강인아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내 남편이요.” 백세헌이 눈썹을 까닥였다. “그 사람은 어디 있지?” 강인아의 목소리에 농담기가 배었다. “바로 눈앞에 있잖아요.” 그녀의 당연한 태도에 백세헌은 피식 웃음이 났다. “무슨 근거로 내가 당신 잘못의 값을 치른다고 생각해?” 강인아가 능청스레 받았다. “어쨌든 당신이 직접 나섰잖아요. 나랑 문제 해결하러 온 거 아니에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강인아는 백세헌의 어깨를 스치며 걸어 나갔다. 백세헌은 그녀와 보폭을 맞추며 물었다. “내가 올 거라고 그렇게 확신했나?” “더할 나위 없이 확신했죠.”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지” “우리는 이해관계가 같은 편이니까.” “곧 아니게 될 거야.” 검은색 비즈니스카 한 대가 서서히 다가와 두 사람 앞에 멈췄다. 한서준이 운전석에서 내려 공손히 문을 열었다. “회장님.” 백세헌의 시선은 여전히 강인아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이혼 얘기할까?” “언제든 응할게요.” 백세헌이 명했다. “타.” 강인아는 비즈니스카의 차종과 엠블럼을 힐끗 보았다. 눈에 잠깐 살기가 번뜩였으나 숨 한 번 쉬는 사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 멀미해요. 장소는 회장님이 정하세요. 곧 따라갈게요.” “난 사람 안 기다려.” “회장님을 1초라도 기다리게 하면 제가 지는 거예요.” “한세 1908.”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인아는 마침 지나가던 스케이트보드 소년을 불러 세웠다. 소년에게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하더니 현금을 몇 장 꺼내 건넸다. 소년은 돈을 받자 발밑의 번쩍이는 보드를 내어주었다. 강인아는 멋지게 보드에 올라타 비즈니스카 옆의 백세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따 뵐게요.” 백세헌과 한서준이 어리둥절한 사이, 강인아는 이미 보드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현석은 강인아가 풀려난 줄도 몰랐다. 아들의 살길은 오직 강인아의 신장뿐이었다. 그런데 강인아가 하필 이 급한 타이밍에 백세헌의 호텔을 박살 냈다. 그가 열 배 배상을 하겠다고 해도 백세헌이 사람을 놓아주지 않겠다면 어떡하겠는가. 역시나 부인과 딸과 함께 호텔을 막 나서자마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누군가 관련 부서에 신고를 넣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립 병원의 몇몇 의사가 돈을 위해, 본인 동의 없이 건강한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 환자에게 이식하려 했다고. 피해자 가족이 병원에 몰려가며 사태는 극히 악화했다. 지금은 인적과 물적 증거가 모두 갖춰져, 관련자들이 이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조사 중이었다. 그중에는 주안혁의 신장 이식을 집도하기로 한 두 명의 의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악재가 눈앞에 쌓이자 주현석의 다리가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강인아는 구류, 의사는 체포... ‘내 금쪽같은 아들은 누가 살리나?’ 한편, 백세헌의 비즈니스카가 한세 클럽에 도착했을 때, 강인아는 스케이트보드를 안고 입구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1908은 이곳에서의 백세헌 개인 구역이었다. 그는 테이블 왼쪽에 앉아 침착한 준수함으로 와인을 음미하고 있었다. 사흘 전에서야 그는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 전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장례를 마친 뒤 백씨 가문의 사업을 차례로 인수인계하기 시작했다. 인계 서류에 서명할 때, 변호사가 그에게 가죽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혼인증명서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변호사는 생전에 그의 아버지가 이미 며느리 후보를 골라 두었다고 말했다. 본인 동의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주도로 그와 강인아라는 여자의 혼인 관계가 성립해 있었고, 심지어 법적으로 그들은 벌써 1년 전부터 부부였다. 테이블 오른쪽의 강인아 역시 특제 회전 펜을 굴리며 백세헌만큼이나 복잡한 심경이었다. 사흘 전, 집에 불청객이 찾아왔는데 바로 혼인증명서 두 개를 들고 온 백세헌이었다. 왜 자신의 이름이 배우자란에 올라 있는지 따져 묻는 그 앞에서, 강인아는 그보다 더 어리둥절했다. 백세헌이 문을 두드리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이 1년 전에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백세헌의 시선은 강인아 손끝에서 꽃처럼 흩날리는 펜 묘기에 이끌렸다. 휘도는 펜 꽃은 눈부셨고, 펜의 형상도 시중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잠시 감상하던 그는 한서준을 향해 눈짓했다. “꺼내 와.” 한서준이 서류 가방에서 문서를 꺼내 강인아 앞에 내밀었다. “강인아 씨, 이건 당신과 회장님의 이혼 협의서입니다. 읽어 보시고 문제없으면 서명하세요.” 강인아는 협의서를 받아 휘리릭 넘겨 보았다. 요지는 간단했다. 이 근거 없는 결혼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것. 어떤 경우에도 둘 사이에 과거 혼인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인정하지 말 것. 읽다가 강인아의 시선이 한 조항에 멈췄다. “이혼에 경제 보상도 있어요?” 한서준이 공백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백세헌이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변호사한테 확인했다. 이 혼인이 성립한 건, 아버지가 네 양부한테 진 빚 때문이래. 백씨 가문이 먼저 빚을 졌으니 보상은 아끼지 않을 거야.” 그는 공백 수표 쪽으로 턱끝을 까딱했다. “얼마든지, 네가 직접 써.” 강인아가 물었다. “아무렇게나 써도 돼요?” “협의서 내용에 동의만 하면, 네가 적은 보상은 그대로 집행돼.” “그럼 사양 안 할게요.” 회전 펜이 순식간에 만년필로 바뀌더니, 강인아는 두 사람 앞에서 금액란에 9를 길게, 줄줄이 써 내려갔다. 그녀가 계속 적어 내려가려 하자, 한서준이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한번 해 주의를 환기했다. 강인아가 장난스레 둘을 보았다. “제가 너무 과하게 부른 건가요?” 백세헌은 태연했다. “재물은 잃어도 다시 벌면 돼. 중요한 건 네가 만족하는 거야.” 강인아가 웃었다. “회장님, 좀 재밌네요.” 그녀는 회전 펜을 멋지게 세 번 흩뿌리더니 펜촉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수표는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불꽃을 훅 불어 끄자 펜촉은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고, 강인아는 이혼 협의서에 시원하게 서명했다. 획은 과감했고, 종이를 뚫을 듯 힘찼다. ‘강인아’라는 세 글자는 그녀의 얼굴처럼 예술품같이 아름다웠다. 그때, 테이블 위에 두었던 강인아의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강인아는 그 알림을 보지 않은 채 서명한 협의서를 밀어 백세헌의 앞으로 내줬다. “부부는 못 해도 원수로 지낼 필요는 없죠. 앞으로 우리는 각자 갈 길 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둘이 결혼했었다는 건 제가 비밀로 할게요.” 휴대폰을 집어 든 강인아는 일어나 마스크를 썼다.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백세헌은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오후 법원에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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