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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인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한 번 휘저어 들었다는 뜻을 보였다. 강인아가 1908을 떠난 뒤에야 한서준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과 강인아 씨의 이혼 협의, 이렇게 해서 끝난 겁니까?” 백세헌은 레드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한 비서, 강인아 자료 가져와.” 한서준은 사실대로 보고했다. “강인아 씨는 주현석과 전처 강서영의 딸입니다. 그때 주씨 가문은 자산이 조금 있었고, 고아원에서 자란 강서영은 부모가 불명입니다. 결혼 3년 차에, 주현석의 현 부인 진만옥이 뱃속의 남녀 쌍둥이를 앞세워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강서영은 남편의 외도를 받아들이지 못해 두 살 딸을 데리고 멀리 떠났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강인아 씨의 어머니는 십수 년 전에 실종됐고, 강인아 씨는 양부에게 길러졌습니다. 여러 해 동안 북쪽의 어느 소도시에 살아왔다고 합니다.” 백세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머니가 실종됐어?” “네, 회장님. 실종이지 사망이 아닙니다. 그래서 강인아 씨는 명실상부한 고아가 됐습니다.” 주씨 가문과 강인아의 관계를 말할 때, 한서준의 표정에는 개인적 감정이 비쳤다. “얼마 전, 주현석이 먼저 강인아 씨를 찾아가 혈육 보상 운운하며 족보에 올리자고 했고, 재산 분할도 약속했습니다. 사실 주씨 가문이 딸을 다시 인정한 건, 주예원의 쌍둥이 오빠 주안혁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주안혁을 언급하자 한서준의 눈빛에 싫증이 스쳤다. “응석받이 재벌 2세로, 차로 사람을 치고, 패싸움과 소란을 일삼고, 깡패와 결탁해 학교에서 동급생을 괴롭혔습니다. 심지어 한 여학생을 강요해 자신을 위해 투신하게 만들었고, 검시 때 여학생의 배 안에는 발달되지 않은 아기가 있었습니다. 하늘도 주안혁의 악행을 못 본 척하지 않았는지 어린 나이에 중병을 얻었고, 빨리 신장이식을 해야만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강인아 씨가 잡혀갈 때, 주현석이 평소와 달리 회장님에게 선처를 구한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지금 보니 선처는 구실이고, 강인아 씨에게 그 망나니 아들에게 신장을 강제로 이식하게 만드는 게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강인아 씨 건이 이미 정리됐는데, 주씨 가문 쪽에 알릴까요?” 백세헌이 코웃음 쳤다. “내가 보는 건 주예원의 능력이야. 그 집안 사람들이 죽든 살든 상관없어. 강인아는 어려도 머리가 좀 돌아가. 음모든 양모든 아주 잘 다루지.” 한서준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강인아의 신의 한 수에 엄지를 세웠다. 주씨 가문 앞에서 위세를 떨쳤을 뿐만 아니라, 백세헌의 명성을 이용해 구류소로 숨어 들어가 떳떳하게 수술 시간을 넘겨 버렸다. 설령 주안혁이 불행히 죽더라도 강인아와는 털끝만큼도 관계가 없다. 판을 뒤집은 뒤, 백세헌이 곧바로 자신을 보증할 거라는 계산까지 섰고, 혹시라도 얌전히 이혼 협의서에 사인하지 않을까 봐 대비까지 해 두었다. 한 수 한 수가 딱 맞아떨어져 흠을 잡을 틈이 없었다. 바깥에서는 모두 주예원을 천재 수재라고들 한다. 하지만 한서준은 시골 출신의 강인아가 계략에서는 한 수 위라고 여겼다. 백세헌이 문득 물었다. “주예원 해킹 분야 실력은 어때?” 한서준은 담담히 말했다. “국내 최정상급입니다.” “제로와 비교하면 누가 더 낫지?” “제로는 해커계의 최상단입니다. 정체가 수수께끼이고 행방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회장님이 주예원과 손을 잡으신 거죠.” 백세헌이 그를 힐끗 봤다. “아쉽게도 주예원의 수상작은 가동하자마자 1초 만에 뚫렸지.” “...” 강인아가 ‘영하’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쩌렁쩌렁한 음향 소리에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누군가 손을 몰래 등 뒤에서 뻗었고, 강인아의 어깨에 닿기도 전에 팔이 붙들려 자칫하면 업어치기를 당할 뻔했다. 기습한 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인아야, 나야.” 돌아보니 뒤에는 극도로 잘생긴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이목구비가 남녀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중성적이고, 연한 파란색 캐주얼 수트를 건달 같으면서도 멋스럽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강인아에게 꽉 잡혔던 팔을 문지르며 투덜댔다. “나이도 어린 데 힘은 꽤 세네. 팔이 부러질 뻔했어.” 강인아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등 뒤에서 기습하면 대가를 치러야지. 지현우, 내 성질 오늘 처음 알았어?” 지현우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장난이야. 참, 쪼잔하기는.” 잘생긴 남자 직원이 과일 접시를 들고 마주 왔다가 지현우 옆을 지날 때 먼저 인사했다. “사장님.” 눈길은 통제되지 않게 강인아에게로 갔다. ‘영하’는 경시에서 유명한 클럽이었다. 이곳 종업원들은 남자든 여자든 얼굴값을 하고, 사장 본인도 하늘이 시샘할 만큼 잘생겼다. 잘난 남녀가 모인 곳에서도 강인아의 미모는 한 줄기 절세의 빛이었다. 지현우는 남자 직원에게 손을 휙 저어 얼른 꺼지라고 신호했다. 남자 직원은 미련스레 강인아에게서 시선을 떼고 접시를 들고 성큼 떠났다. 지현우는 강인아의 어깨를 끌어 자신의 전용 자리로 앉으며 물었다. “여기 스타일 마음에 들어?” “너 로펌 하는 거 아니었어?” 지현우는 바텐더에게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지시하고 나서 웃으며 강인아를 봤다. “로펌은 돈 버는 부업. 나이트클럽이 내가 추구하는 본업이거든.” 강인아는 어이가 없었다. 지현우는 법조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했다. 그가 맡은 사건은 승률이 백 퍼센트. 로펌이 승승장구인데, 그는 사업의 중심을 이 시끌벅적한 클럽으로 옮겼다. 머리에 물이라도 찬 모양이었다. 잠시 후 바텐더가 음료 두 잔을 내왔다. 하나는 푸른 칵테일, 하나는 데운 우유였다. 지현우는 따뜻한 우유를 강인아 쪽으로 밀고, 자신의 잔과 우유 잔을 살짝 부딪쳤다. “자, 오빠랑 한잔하자?” 강인아는 질색했다. “나를 불러 놓고 우유 마시자는 거야?” 지현우가 코웃음 쳤다. “내가 왜 너를 부른 건지 몰라? 너 경시에 온 지 얼마나 됐어?” “일 년.” “네가 구류됐다는 소식 못 들었으면, 나를 먼저 찾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 지현우의 친구는 천하에 깔렸지만, 그가 아끼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북쪽 소도시에 살던 강인아가 그중 하나였다. 1년 전, 강인아는 그의 인맥에서 기이하게 사라졌다. 주변에 모조리 물어도 강인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수수께끼였다. 바로 오늘 저녁, 지현우는 우연히 강인아가 경시에 와 있고 사건에 휘말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변호사 신분으로 보석을 하러 갔으나 강인아에게 돌려보내졌다. 강인아는 한마디만 툭 던졌다. 오래 안 갈 거고,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과연 예전 그가 알던 강인아였다. 말한 대로 반드시 해내는 여자. 강인아는 고개를 젖혀 우유를 들이켰다. “1년 전에 일이 좀 있었어. 주변 친구들까지 말려 들이기 싫어서 잠깐 숨었지.” “무슨 일?” “묻지 마!” “나를 친구로 안 보냐?” “친구니까 말 안 해.” 지현우의 얼굴이 굳었다. “지난 1년 동안 다들 너 찾느라 미칠 지경이었다는 거 알아?” 강인아는 눈을 들어 그를 흘겼다. “내 소식 밖으로 새지 않게 해줘.” 지현우가 의아해했다. “숨고 싶었다면, 왜 주씨 가문이 너를 찾게 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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