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여수민이 셋집은 남민우와 함께 연경미대 근처 동네를 발품 팔아 다니며 겨우 구한 집이었다. 남민우는 여수민의 두 달 치 집세를 미리 내줬고 여수민은 두 달 만에 그 돈을 모두 갚아버렸다. 돈을 갚을 때 여수민의 표정이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여 남민우는 화가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당시 여수민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남민우의 뺨에 살짝 입맞춤했다. 그들이 함께 찾고 여수민이 2년이나 살아온 그 집에 하준혁을 들였다는 생각에 남민우는 불안감과 모욕감이 밀려왔다. 남민우는 여수민의 어깨를 붙잡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수민아, 우리가 함께하든 말든 너는 하준혁이랑 멀리해야 해. 외모만 보고 놀려는 걸지도 몰라. 우리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지금은 돈도 써가며 문제를 해결해 주고 너를 즐겁게 해줄지 몰라도 헤어질 때가 되면 더 무정할 수 있어. 부자들은 순진한 여자들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니 꼭 조심해야 해.” 여수민이 몸과 마음을 하준혁에게 모두 빼앗길 것 같다는 상상만으로도 남민우는 아찔했다. 누군가가 여수민을 노리고 빼앗으려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까지 밀려왔다. 남민우는 여수민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민아, 나를 다시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하준혁은 절대 안 돼.” 여수민은 남민우를 밀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그녀의 압박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준혁의 은혜와 그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여수민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있는 것만 같았고 그 손이 그녀를 하준혁 곁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차라리 하준혁과는 멀리 떨어져 엮이지 않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그녀의 본의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한때는 남민우가 그녀를 어루만지고 입맞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수민은 강하게 저항했고 이 모든 저항이 마치 다른 남자를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남민우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여수민의 입술을 찾으려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