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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월요일 오후, 서하영은 정유나와 함께 강의실로 향했다. 외국어관 앞을 지나고 있을 때, 갑자기 웅성거리는 무리 하나가 몰려왔다. 맨 앞에 선 키 크고 준수한 외모의 남자는 뜨겁게 불타는 눈빛으로 오직 서하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선우야!” 정유나가 흥분하며 서하영의 소매를 당겼다. 지선우의 손에 들려 있는 꽃다발을 본 서하영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녀가 자리를 피하려 몸을 돌려보니, 주민정과 그녀의 친구들이 곱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앞길을 막아서 있었다. 주민정이 지선우를 좋아하고, 지선우가 서하영을 좋아한다는 건 강진대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잠시 후, 지선우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눈빛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부드럽게 울렸다. “서하영,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귀자.” 정유나는 서하영보다도 더욱 흥분해 연신 그녀의 팔을 꼬집으며 얼른 받아들이라고 눈짓했다. 지선우는 집안도 좋고 외모도 출중한 데다 학생회 회장까지 맡고 있는 수재였다. 그런 그가 무려 3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서하영만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순식간에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외쳤다. “사귀어라! 사귀어라!” 그 요란한 소리에 마침 맞은편 건물 복도 위를 지나던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인파 속에서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한 그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서하영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세상과 스스로를 철저히 단절시켰었다. 이제껏 애써 부드러워지려,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해왔지만 주위에서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녀는 지선우를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 “난 널 좋아하지 않아.” 순간 지선우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럼에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준수한 얼굴에는 집요함이 가득했다. “서하영, 더는 나 시험하지 마. 너도 날 좋아한다는 거 알아.” 그는 서하영이 자신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줄곧 받아들이지 않은 건 그저 밀당을 하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나는 널 시험한 적 없어. 정말 좋아하지 않는 거야.” 서하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지선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그 순간 주위의 소음도 사라지고 공기도 뻣뻣하게 굳어졌다. 마침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했건만, 서하영은 조금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았다. 모욕감이 온몸을 덮쳤다. 그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영아, 사람들이 많아 불편한 거라면 조용한 데 가서 얘기하자.” “난 이미 분명히 말했어.” 서하영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없으면 단호히 거절하는 게 예의라고 믿었다. 애매하게 행동하며 여지를 주는 건 서로를 해칠 뿐이다. 지선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정말 나 안 좋아한다고?” “그래, 안 좋아해.” 단호하고 망설임 없는 목소리였다. 그의 손에서 장미가 처참히 떨어져 내렸다. 그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서하영을 빤히 노려보다가 돌연 고개를 돌려 주민정에게 말했다. “너, 나랑 사귈래?” 주민정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얼어붙었다가 앞으로 다가갔다. “그게 무슨 뜻이야?” 지선우는 서하영을 똑바로 응시하다가 주민정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더니 입술을 덮쳤다. 주위에서 탄식과 놀람이 터져 나왔다. 서하영은 그 무료한 광경에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정유나는 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서하영!” 지선우가 절규하듯 외쳤다. 서하영은 발걸음을 멈췄으나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그의 두 눈엔 시뻘겋게 핏발이 서 있었고, 목소리에는 광기가 스며 있었다. 그러나 서하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내디뎠다. 주민정은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그의 손을 거칠게 밀쳐냈다. “날 뭐로 보는 거야?” 그녀는 서하영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고는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3층 복도, 임도윤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무표정으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유나는 아쉬운 듯 지선우의 뒷모습을 흘끗거리다가 서하영에게 투덜댔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지선우 같은 남자도 마음에 안 들면 어떤 남자가 좋은 건데? 지선우가 진짜 주민정이랑 사귀면 너 후회할 거야!” 서하영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정말 걔한테 아무 감정 없어. 좋아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고백 받아들여야 해?” “그럼 넌 도대체 누구를 좋아하는데?” 서하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안 좋아해.” 정유나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나는 네가 날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서하영은 경악하며 그녀를 쳐다보다가 곧 장난스럽게 반격했다. “오늘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집에 뭔가 두고 온 거 아냐?” “뭘?” 정유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수치심.” 그제야 알아차린 정유나는 서하영의 팔뚝을 꼬집었다. “서하영! 난 널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감히 날 놀려?” 서하영은 배시시 웃으며 앞으로 뛰어갔다. “이제 그만해. 곧 네가 좋아하는 교수님 수업이잖아. 이러다 지각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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