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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박태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배시우를 안아 올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의 품 안에서 흘러내린 피가 슈트에 스며들며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강지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그녀는 조용히 뒤를 따라 걸었다. 병원 복도는 싸늘한 형광등 불빛으로 덮여 있었다. 수술실의 표시등은 여전히 꺼질 줄 몰랐다. 박태형은 문 앞에 서 있었다. 슈트 소매에는 여전히 배시우의 피가 마르지 않은 채 묻어 있었다. 늘 냉정하던 그의 얼굴에는 드물게 불안이 스쳤다. 강지영은 그 옆에 앉았다. 입을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수술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의사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환자가 대량 출혈이라 긴급 수혈이 필요한데 RH 마이너스 혈액형이라 혈액 재고가 부족합니다!” 박태형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지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RH 마이너스 혈액형이에요. 제가 수혈해 줄 수 있어요.” 박태형이 고개를 홱 돌렸다. 놀라움이 눈빛에 번졌다. 강지영은 담담히 그 시선을 마주했다. “사람부터 살려야죠.” 강지영은 간호사를 따라 채혈실로 들어갔다. 400cc의 혈액이 몸 밖으로 천천히 빠져나가 그녀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지만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 박태형은 한쪽에 서서 그녀의 가느다란 팔에 주삿바늘이 꽂힌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마음속에 묘하게 이상한 느낌이 점점 짙어졌다. ‘도대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채혈을 마친 강지영은 채혈실로 나섰는데 박태형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수술실 밖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배시우 씨 괜찮을 거예요.” 박태형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아직도 안 갔어?” 강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배시우 씨가 저희 관계에 대해 오해하고 있어요. 깨어나면 직접 설명해야죠.” 박태형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응시하더니 불쑥 물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 강지영은 순간 멈칫했다. 그녀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의사가 걸어 나왔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마취가 풀리면 환자는 곧 깨어날 겁니다.” 박태형의 잔뜩 굳어 있던 어깨가 그제야 풀렸다. 강지영은 묵묵히 한 쪽으로 물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배시우가 의식을 되찾았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에 서 있는 강지영을 보더니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태형아, 나더러 두 사람을 축복하라는 뜻이야? 그래서 또 저 여자를 데려온 거야?” 강지영은 서둘러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조용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배시우 씨, 오해예요. 그날 태형 씨는 정말 회의가 있었어요. 저를 백화점으로 데려가 옷을 사러 간 건 그냥 잠깐 들른 것뿐이에요. 데이트가 아니었다고요. 시우 씨를 속인 게 아니에요.” 박태형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둘 정략결혼인 거 알잖아. 감정 같은 거 없어.” 배시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정말 저 사람한테 아무 감정도 없다고 증명할 수 있어?” 박태형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증명? 어떻게 하면 되는데?” 배시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창밖을 가리켰다. “저 호수에 던져버려.” 박태형의 얼굴이 굳었다. “시우야...” “왜? 망설여져?” 배시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럼 좋아하는 거 맞네.” 잠깐의 침묵 후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결국 경호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수에 던져버려.” 강지영의 눈이 커졌다. 가슴속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가 배시우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견뎌야 했다. 경호원들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박태형은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표정은 전혀 읽히지 않았다. 얼어붙은 호수 위, 그녀의 몸이 밀려 나갔다. 차가운 물이 몸을 감싸는 순간 숨이 막혀왔다. 얼음조각 같은 물이 코와 입으로 밀려들었고 사지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물에 떠오르려 했지만 몸은 계속 아래로 가라앉았다. 호숫가에 서 있던 경호원들은 그녀를 냉담하게 바라볼 뿐,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강지영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바로 그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쳐 갔다. 부모에게 버려져 시골에 남겨졌을 때, 겨울에 두꺼운 옷이 없어 덜덜 떨면서 보모 집 헛간에 웅크려 앉아 난로에 몸을 녹이던 기억 말이다. 그녀는 원래부터 누구의 품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지영은 마침내 물에서 끌어올려졌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입술은 퍼렇게 질려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때, 누군가가 따뜻한 수건으로 조심스레 몸을 닦고 있었다. 그 손길은 낯설 만큼 부드러웠다. 강지영은 무의식중에 그 손을 꽉 잡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이제 곧 떠날 수 있어...” 그 순간, 그 손이 거칠게 강지영의 손을 잡아챘다. 뼈가 으스러질 만큼 강하게 말이다. “떠난다고?” 박태형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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