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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정이현은 정윤재가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을 따르듯 전학과 출국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설명할 수 없는 숨 막힘에 사로잡혔다. 가슴 한복판이 먹먹하게 막혀오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과 분노가 뒤섞여 치밀어 올랐지만 그를 붙잡을 명분도, 저지할 권리도 그에겐 없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가슴은 더없이 뒤숭숭했으나 정이현은 예정대로 박경하의 대학원 입학이 확정된 그날, 그녀에게 정식으로 고백했다. 캠퍼스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벚꽃나무 아래, 그는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손에 들고 수려한 얼굴에 완벽하게 계산된 미소를 얹은 채 조용히 말했다. “경하야, 나랑 사귀지 않을래?” 그 말에 박경하는 놀란 듯 입을 손으로 가리며 눈가를 붉혔고 흥분을 참지 못한 채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나 진짜 오늘을 너무 오래 기다렸어, 이현 오빠, 진짜 고마워...” 주변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눈부시고 어울리는 ‘왕자와 공주’의 결말에 모두가 감탄했으며 이야기는 그렇게 완벽하게 마무리된 듯 보였다. 정이현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박경하를 품에 안으며 기뻐하고 만족해야 마땅했다. 이건 그가 십 년 넘게 지켜왔고 치밀하게 계획해 손에 넣은 ‘완벽한 상대’였다. 그런데 왜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와야 할 환희와 감격은 끝내 찾아오지 않고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만이 잔잔하게 퍼져가는 건지 정이현은 알지 못했다. 박경하와의 연애는, 그가 꿈꾸던 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애교가 많았고 자주 그에게 기대려 들었다. 사소한 일에도 금세 토라져 입을 삐죽였고 그는 다정하게 그녀를 안아주며 달랬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신은 자꾸 딴 데로 새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든 일에 의존했고 결정도 선택도 준비도 그가 대신해 주길 원했다. 정이현은 익숙한 손길로 그런 일들을 처리해 주었지만 문득 그런 행위들이 ‘사랑’이 아니라 ‘업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곱게 단장하고 부끄러운 얼굴로 다가왔던 순간에도 그는 이유 모를 피로감과 공허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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