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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휴대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예우미의 부드럽고 순종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차갑고 기계적인 음성이었다. “죄송합니다. 현재 통화 중이니,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정이현의 손이 서서히 굳었다. 날렵한 손가락 마디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하얗게 솟아올랐고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답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돌아오는 건 언제나 똑같은 기계음뿐이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 위로 서서히 한기가 내려앉았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숨이 새어 나왔고 눈동자 깊은 곳에는 믿기지 않는 어둠과 분노가 뒤섞였다. “감히 나를 차단해?” 옆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정윤재가 피식 웃었다. “형, 그냥 내버려둬. 차단이면 차단이지 뭐. 어차피 형도 곧 손 털 거였잖아? 이참에 잘됐네. 굳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정리됐잖아.” 그 가벼운 한마디가 가시처럼 박혀 정이현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그는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타고 번져가는 걸 느꼈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피어오른 불길은 이성을 짓누르며 타올랐다. 그는 한순간도 이런 ‘손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도 상대가, 그동안 늘 그에게 고분고분하던 예우미라니. “그 입 다물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싸늘했다. 정윤재는 이내 입을 다문 채 어깨를 으쓱였지만 그 눈빛엔 여전히 장난스러운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정이현은 다시 핸드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알아봐.”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위압이 스며 있었다. “예우미가 지금 어디 있는지. 5분 안에 결과를 보고해.” 그 짧은 5분은 유난히 길고 숨 막혔다. 정윤재는 심심하다는 듯 라이터를 굴리며 앉아 있었고 가끔씩 굳어진 정이현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말해.” “그게...” 비서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예우미 양은 오늘 오전 학교에 가서 퇴학 절차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비행기로 출국했습니다.” “뭐라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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