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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결국, 정이현은 예우미를 ‘고의 상해’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고 갓 헌혈을 마치고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예우미는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끌려가 구치소에 갇혔다. 그곳에서의 삼 일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잔혹한 시간이었고 지옥이 어떤 곳인지 온몸으로 깨닫는 나날이었다. 같은 방에 수감된 여자 죄수들은 어린 여학생 같은 그녀를 본 순간부터 표적 삼았다. 주먹과 발길질은 기본이었고 뺨이 터지도록 맞으며 머리채가 잡혀 바닥을 끌려다니는 건 예삿일이었다. 먹기조차 힘든 감옥 밥조차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고 바닥에 짓이겨지듯 눌려 앉아 조롱과 수모를 견뎌야 했다. 쇠 비린내와 곰팡내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절망이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육체의 고통은 마음이 부서지는 감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지켜온 자존심과, 미래를 향한 모든 희망은 그 더러운 바닥 위에서 처절하게 짓밟혔다. 삼 일이 지나 겨우 풀려났을 때, 예우미는 피멍이 번진 몸을 이끌고 공터 같은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하지만 문 앞에 서서 힘겹게 열쇠를 꺼내려던 순간, 뒤통수에 번쩍, 강한 충격이 내리꽂혔다. 비명조차 내지를 새도 없이 거친 포대 자루가 머리 위로 덮였다. 곧이어 쇠막대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덮쳤다. 피가 입안에 고여 나오고, 온몸의 감각이 무너졌다. “이 여자, 이미 형님이 처리하신 거 아니에요? 왜 또 이렇게...” 누군가의 물음 뒤, 서늘하고 잔인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우리 형은 형이고 나는 나야.” “감히 경하 누나한테 손을 댔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이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 말과 동시에, 자루의 입구가 거칠게 열렸다. 그 틈으로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피부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스며들었다. 순간, 예우미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것은 미끄럽고 차가웠으며 몸 위를 또아리를 틀 듯 기어 올라왔다. 귀 옆에서 ‘스르르’ 하고 들려온 익숙한 소리, 그건 뱀이었다. 비명이 터질 뻔했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무음의 절규뿐이었다. 그녀는 온몸을 비틀며 버둥거렸으나 자루와 뱀의 감촉이 뒤엉켜 그녀를 짓눌렀다. 포대 자루는 다시 봉인되었고 곧 그녀의 몸은 누군가의 손에 번쩍 들어 올려졌다. 쿵! 다음 순간, 얼음 같은 강물 속으로 내던져졌다. 물살이 폐 속으로 밀려들며 숨이 막혔다. 차가운 물결이 몸을 휘감고 뱀이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는 감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살려줘... 제발...” 그녀의 목소리는 금세 물속으로 삼켜졌다. 그렇게 예우미는 죽음과 맞닿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가 그녀를 다시 끌어올려 쓰레기처럼 인적 드문 도로 위에 내던졌다. 포대가 풀리고 그녀는 거친 도로 위를 구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컥, 켁...” 기침과 함께 진흙과 물을 토해냈다. 흐릿한 시야 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몸은 젖은 천 조각처럼 축 늘어졌고 상처마다 차가운 물이 스며들어 타들어 갔다. 그녀는 온 힘을 짜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눈앞이 까맣게 가라앉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엔 병실의 흰 불빛이 번졌다. 손등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간호사가 무심히 다가와 말했다. “정신이 드셨어요? 일어나서 진료비 좀 납부하세요.” 예우미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켜 복도로 나갔다. 벽을 짚으며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복도에서 마주친 두 얼굴에 걸음을 멈췄다. 정이현, 그리고 그의 곁에 선, 그와 똑같은 얼굴의 정윤재. 두 사람 모두 놀란 듯 잠시 멈칫했다. “너, 여기서 뭐 해?” 정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병원복과 팔에 남은 상처 자국을 스쳤다. 예우미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옆에 선 정윤재를 바라봤다. 그 눈빛엔 공포도 분노도 아닌, 오직 공허함만이 깃들어 있었다. 잠시 후, 정이현은 표정을 정리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쪽은 내 동생, 정윤재. 외국에서 막 돌아왔어.” 그리고 예우미를 향해 덧붙였다. “이쪽은 내... 여자친구, 예우미.” 정윤재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웃었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그 순간, 예우미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미묘한 숨소리였지만 곧 터져 나오는 웃음이 눈물로 번졌다. 그녀의 반응에 두 남자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정이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경찰서까지 갔다 왔으니 교훈을 얻었을 거라 믿는다. 다시는 경하한테 손대지 마.” 그때, 병실 안에서 간호사가 박경하의 이름을 불렀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누구도 예우미에게 다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유리문 너머, 두 사람이 박경하 곁에서 다정하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예우미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이번엔 곧,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예우미 학생, 퇴학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학교 행정실 직원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무표정하게 아파트로 돌아갔다. 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몇 벌의 옷, 한두 권의 책, 그리고 휴대폰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것들을 조용히 가방에 넣고 숨을 고르더니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걸 두고 떠났다. 그리고 2주 후. 두 형제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박경하는 완전히 회복해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 무렵, 대학원 추천 명단이 발표되었고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는 박경하의 이름으로 채워졌다. “이현 오빠! 드디어 합격했어! 오늘 파티 열 건데, 오빠도 꼭 와야 해!” 박경하는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가 방을 나서자, 정윤재는 비스듬히 정이현을 바라보며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 “형, 이제 예우미랑도 정리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말이야 그 전에 한 번만 더 그 여자랑 자면 안 될까? 이제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정이현의 표정이 굳어졌고 놀람인지 불쾌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갔다. “그렇게 좋았냐?” 정이현이 낮게 물었다. 정윤재는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좋다 못해 끝내주더라. 형은 그 맛을 몰라서 그래. 한 번 맛보면 절대 잊기 힘들 거야.” 그 말에 정이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열이 치밀었다. 그는 짧게 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 밤,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지.” 그렇게 말하며 예우미의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냉정한 기계음뿐이었다. ‘고객님이 전화받을 수 없어...’ 정이현의 얼굴이 검게 굳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윤재가 물었다. “형, 왜 그래?” 정이현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예우미, 날 차단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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