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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는 단 한 번도 예우미를 바라보지 않았다. 시선은 차갑게 그녀를 외면한 채, 오직 교수에게만 말을 이었다. “경하의 논문은 제가 옆에서 밤새며 직접 지켜봤습니다. 경하가 표절을 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비슷하다면...” 말을 잠시 멈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예우미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네요.” 교수는 정이현과 예우미가 연인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감싸기는커녕 박경하의 편에 서 있었다. 게다가 ‘정씨 가문’이라는 배경까지 고려하자 교수의 판단은 망설임 없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예우미! 증거까지 다 나왔는데, 더 할 말 있어? 정말 실망이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예우미는 정이현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왜 이렇게까지 냉정한지 이해하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박경하 하나만을 위해서였다. 그녀와 가짜 연애도 불사했고 사적인 사진을 유포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으며 이젠 심지어 자기가 표절한 논문의 책임마저 그녀에게 뒤집어씌웠다. ‘이쯤 되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예우미는 자신이 무슨 변명을 한다고 한들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교수는 정이현과 박경하에게 먼저 나가라고 한 뒤, 남겨진 예우미에게 날 선 질책을 퍼부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했다. “네 논문은 무효 처리야. 학교 기록에도 남길 거고.” 예우미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겨 교수실을 나왔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온 순간,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정이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조용히 멈춰 섰다. 그리고 지난 2년을 함께했던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 할 얘기 없어?”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어제 경하 논문이 실수로 삭제됐어. 마감일이 얼마 안 남아, 네 걸 참고하라고 줬지.” ‘참고했다고?’ 예우미는 숨이 막히는 듯 가슴이 미어졌다. ‘오타까지 똑같이 베낀 게 어떻게 참고야.’ 하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넌 어차피 입학 추천 명단에서도 빠졌잖아. 그 논문은 경하한테 정말 중요해. 넌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잖아.” 그의 입에서는 박경하라는 이름만 반복될 뿐이었고 예우미가 어떤 기분일지, 얼마나 상처받았을지에 대해서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 순간, 억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예우미는 눌러왔던 억울함과 견뎌낸 고통, 짓밟힌 자존심을 한꺼번에 쏟아냈고 처음 보는 예우미의 모습에 정이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예전의 예우미였다면 둘 사이에 작은 의견 충돌만 있어도 그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던 아이였다. ‘자기 논문을 박경하에게 넘기면서도 단 한 마디 불평조차 하지 않던 그런 아이였는데 이번엔 왜 이러는 거지?’ “논문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됐고, 너 나랑 밥 먹고 싶어 했잖아? 오늘 시간 되니까, 가자.” 그 순간, 예우미는 그의 손을 번개처럼 뿌리쳤다. 그 손에 실린 힘에는 지금껏 눌러온 분노와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안 가!”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정이현. 나 그렇게 속도 없는 여자 아니야. 나랑 밥 먹는 게 그렇게까지 싫다면 이제 다신 같이 밥 안 먹으면 되잖아!” 그 말을 끝으로, 예우미는 단호하게 등을 돌렸고 도망치듯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정이현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예우미의 반응에, 그의 차가운 눈매에도 희미한 의아함과 불쾌감이 스쳤다. 그녀는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그의 눈을 바라볼 때마다 조심스럽고 투명한 빛이 서려 있었고 그가 뭐라 하든 늘 따랐으며 살짝 표정만 굳혀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곧장 반성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엔 그 어떤 따뜻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냉정한 절망과 냉랭한 거리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저 논문 하나 때문에 삐진 건가? 너무 유치하잖아.”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끝내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그에게는 그저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박경하는 신경 써야 할 대상이었지만 예우미는 아니었다. “알아서 풀어지겠지.” 그는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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