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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혼자 식당으로 간 예우미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몇 입 삼키고는 그대로 교무처로 향했다. 퇴학 사유를 묻는 직원의 질문에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유학 준비하려고요.” 예우미가 얼마나 우수한 학생이었는지 알고 있었던 직원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최근 떠들썩했던 ‘사진 유출 사건’과 ‘논문 표절 논란’을 떠올리자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매뉴얼에 따라 형식적인 말을 건넸다. “퇴학 절차는 며칠 정도 승인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동안은 평소처럼 수업 들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예우미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멍하니 수업을 들었다.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시간은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느리게 흘렀다. 종이 울리고 책을 품에 안은 채 인파 속을 따라 교실을 나서던 중, 정원을 지나던 길목에서 갑자기 학생들이 한쪽으로 몰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빨리 와! 교문 앞에 싸움 났대!” “헐, 정이현이래! 나 정이현이 화내는 건 처음 봐!” “박경하 때문이라는데 완전 멋있어!” 그 말에 그녀의 걸음이 멈췄고 가슴 어딘가가 바늘로 콕 찔린 듯 아렸다.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리듯 발을 옮기자, 이미 많은 학생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그 한가운데 정이현이 있었다. 평소라면 언제나 냉정하고 절제된 그였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완전히 분노에 잠식된 얼굴로 다른 남학생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주먹은 망설임 없이 내리꽂혔고 그의 얼굴에는 예전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기가 서려 있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하나둘 섞여 그녀의 귀로 흘러들었다. “저 남자, 박경하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대. 그래서 질척거리다가...” “정이현 워낙 점잖잖아. 저렇게까지 화내는 건 처음 봐.” “근데 원래 여자친구는 예우미 아니었어? 왜 박경하 때문에 싸우는 거야?” “하, 아직 몰라? 예우미 사진 그렇게 퍼졌는데 아직 미련이 있을까? 이미 전 여친이지 뭐.” 그 말들이 잔인하게 그녀의 마음을 찔러댔고 이미 메말라 버린 심장 한구석이 다시금 아파왔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박경하가 울며 뛰어나와 정이현의 허리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 “그만해! 나 무서워... 제발, 그만 싸워!” 그 순간, 정이현의 손이 멈췄다. 피투성이가 된 남학생을 놔주고 돌아서자 그의 얼굴에 서려 있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예우미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조심스럽고 다정하며 어쩐지 서툰 부드러움이 깃든 얼굴이었다. 그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웠지?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 그 한마디, 그 짧은 순간의 온기는 마치 독이 묻은 칼날처럼 예우미의 마지막 환상을 완전히 베어냈다. 그는 한 번도 그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 적이 없었고 한 번도 그렇게 다정하게 말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순간조차 그는 그녀를 꺼렸고 자신이 아닌 동생을 대신 보냈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단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때, 정이현의 시선이 군중을 훑다 예우미와 마주쳤다. 그도 놀란 듯 잠시 멈칫했고 그녀가 이곳에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눈치였다. 그 순간, 그의 눈에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복잡한 빛이 스쳤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예우미는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을 본 것처럼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돌아서서 걸어갔다. 정이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현 오빠, 왜 그래?” 박경하가 그의 품에 기대 속삭이자 그는 다시 시선을 내리깔며 짧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평정을 되찾은 듯한 목소리였지만 마음 한구석의 이질적인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정윤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예우미와 있었던 언쟁과 방금의 싸움까지 간단히 정리해 전하며 말했다. [오늘 밤에 네가 가서 좀 달래.]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달래긴 뭘 달래, 그냥 헤어지면 되지.」 정이현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래, 굳이 달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쉽사리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잠시 생각 끝에 그는 핑계를 만들어냈다. “대학원 추천 명단이 아직 확정 안 됐잖아. 경하한테 영향 가면 곤란하니까, 연기라도 해야지. 요즘 조심 좀 해.” 조금 후, 답장이 도착했다. 「알겠어 형. 내가 오늘 밤에 가서 달래줄게.」 그날 밤, 예우미는 공허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더니, 정윤재가 들어왔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자?” 그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가볍고 장난스럽게 다정했다. 예우미는 등을 돌린 채 짧게 대답했다. “그냥 피곤해서.” 정윤재는 그녀 말투에 스친 냉기를 단번에 눈치챘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에서 품에 안으며 능숙한 어조로 달래기 시작했다. 논문 문제와 싸움에 대한 일도 언제나처럼 위선적인 말투로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듣는 그녀에겐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었다. ‘형은 상처를 주기 바쁘고, 동생은 달래주기 바쁘고...’ 그 형제의 짜맞춘 연극은 완벽했다. 정윤재는 그녀가 반응이 없자, 언제나 그랬듯 습관적으로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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