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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이건 저희 매장 최신 신상이에요.”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정성스럽게 소개했다. 강유진은 연보라색 드레스를 집어 들고 막 입어보려 했다. 그때 점장이 전화 한 통을 받더니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고 이내 조금 난처한 듯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드레스는 이미 다른 고객이 예약하신 상태입니다.” 강유진은 개의치 않고 다른 드레스를 골랐다. 워낙 몸매가 좋아 무엇이든 잘 어울렸기에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서동민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마침 점심시간이라며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강유진 역시 먼저 제안하려던 참이었다. 뜻밖에도 서로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매장을 나서려는 찰나, 하재호가 노윤서와 함께 별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차들이 스치듯 지나갔고 노윤서가 먼저 서동민의 차를 알아봤다. “저거, 동민이 차 아니야?” 노윤서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비꼬듯 덧붙였다. “또 같이 있네? 요즘 둘이 꽤 가까운 것 같아. 강 비서가 동민이 만나려고 칼퇴근하는 거 아냐?” 이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사직서를 낸 거지. 새로운 인맥 잡았네.” 노윤서의 목소리에는 강유진을 향한 경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하재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강유진 문제에 관해선 처음부터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그제야 노윤서는 자신이 괜히 깊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강유진의 사직서를 허락하지 않은 건, 혹시 정말 계약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괜히 선례를 남기면 회사 다른 직원들도 계약자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으니까. 노윤서가 입어본 드레스는 다름 아닌, 강유진이 처음 보자마자 반했던 바로 그 드레스였다. 하재호가 직접 점장에게 예약을 부탁해둔 것이기도 했다. 노윤서는 그 사실만으로도 하재호가 자신을 특별히 챙기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드레스를 입어보곤, 마음에 차지 않는 듯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재호야, 이거보다 회사에 있는 흰 드레스가 더 예쁜 것 같아. 근데 이 드레스도 나쁘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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