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합의 이혼입니까?”
창구 뒤 직원이 고개를 들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김성준의 손가락이 내 엄지와 검지 사이 살을 깊게 파고들었고 통증 때문에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직원이 다시 한번 질문했다.
김성준은 다른 손으로 내 목덜미를 눌러 강제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두 번째 질문에도 대답을 못 하자 직원은 결국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봐요, 남편분. 지금 협박하고 있는 겁니까?”
김성준은 냉소를 지었다.
“그럼 다시 직접 물어보세요. 합의 이혼인지.”
그는 몸을 숙여 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네 아이들을 생각해. 네가 사인하지 않으면 내일부터 그 아이들은 더 이상 김씨 가문 사람이 아니게 될 거야.”
나는 온몸이 굳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올려다봤다.
“성준 씨, 그 아이들은 당신 아이들이야!”
“그게 뭐?”
그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김씨 가문에는 아이들이 부족하지 않아. 난 원하면 얼마든지 더 가질 수 있어. 하지만 임연아 넌 감당할 수 있겠어?”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10년 동안 마흔아홉 번의 배신을 버티며 내가 기다려 온 것은 김성준의 죽음만이 아니었다.
세 아이가 당당하게 모든 것을 상속받을 미래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억지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네, 합의 이혼입니다.”
직원은 몇 초 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결국 자리에 앉아 서류를 내밀었다.
마지막 획을 그을 때, 내 손목은 떨리고 있었다. 슬픔 때문이 아니라 억울함 때문이었다.
김성준은 이혼 확인서를 낚아채듯 빼앗아 들고 뒤돌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밖에는 유지아가 이미 옥상에서 내려와 서 있었다.
그녀는 김성준의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에는 빛이 감돌고 있었다.
김성준은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지아야, 이제 난 자유야.”
그는 유지아의 손을 잡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깊고 열정적인 키스를 나눴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사모님... 아니, 임연아 씨,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양육권을 주장하실 건가요?”
“재산 분할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김성준이 유지아의 손을 잡고 바로 옆 구청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혼인신고 창구였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 서류를 작성하고 서명을 마쳤다. 마지막을 사진을 찍었고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유지아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유지아는 곧바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남은 인생 잘 부탁해. @김성준]
1분 만에 댓글 수가 만 개를 넘어섰다.
나는 김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왔다.
김성준의 부모님도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정호는 분노에 차 찻잔을 집어 던졌다. 찻잔은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망할 놈! 이 망할 놈!”
신윤희는 가슴을 움켜쥐며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연아야, 걱정 마라. 난 절대 그 여우 같은 계집애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그 늙은이가 죽으면 반드시 김성준을 이혼하게 할 거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바로 전화를 걸어 ‘프라이어 테크’라는 회사에 연락했다.
이 회사는 임종을 앞둔 사람의 기억 조각을 합법적으로 추출해 의료, 사법, 유산 분쟁에 활용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