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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 차는 가격도 매우 비싼 데다가 심지어 특별 제작된 것이었다. 결혼한 뒤로부터 고태빈은 사업을 할 때는 체면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그 차를 자기가 쓰겠다고 했다. 당시 서규영도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두 사람은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기에 서규영은 이상하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1년 뒤,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뒤로 서규영에게 차가 필요했는데 고태빈은 그 차를 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 차를 타고 장을 보러 다니다가 혹시라도 긁히거나 한다면 소란이 생길 거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조금 작은 차를 사주겠다고 했고 결국 사준 차가 바로 그 경차였다. 솔직히 얘기해 서규영은 물질적인 것들에 큰 욕심이 없었다. 외관이 다르다고 해도 기능 면에서는 똑같은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태빈의 허영심 가득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눈에 보였다. 서규영은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고태빈은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는 차 옆에서 자신의 커프스단추를 정리하더니 넥타이까지 위로 살짝 올렸고 그의 목젖도 따라서 움직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고 점잖은 신사였다. 예전이었다면 서규영은 그를 멋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정이 식으니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은 움직임도 사실은 다 철저히 계산된 아주 작위적인 행동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고태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서규영이 평소처럼 자신을 마중 나오지도 않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고태빈은 무안한 듯이 헛기침을 한 뒤 서규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서규영은 그가 다가오자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 고태빈은 서규영의 옆으로 걸어갔으나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일부러 손목시계를 보면서 도도한 척했다. “다음번에는 약속 잡고 싶으면 미리 연락해. 요즘 회사 상장을 앞두고 있어서 많이 바빠. 원래 오늘 9시에 주주 회의가 있었는데 네가 불러서 일부러 회의를 미뤄두고 여기까지 온 거야.” 서규영은 시선을 들어 고태빈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서규영은 고태빈이 회의를 미루고 왔다고 하면 매우 기뻐하면서 감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오만함과 자신을 무시하는 그의 태도만 보였다. 그리고 서규영은 처음부터 주주 회의가 없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고태빈은 자신을 다정한 남편처럼 보이게 하려고, 또는 서규영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일부러 그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서규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 준비해 뒀으니까 너는 협조만 해. 오늘 조정조서만 작성하면 바로 회사로 돌아가서 회의할 수 있을 거야.” 고태빈은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조정조서? 무슨 조정조서?” 서규영이 말했다. “우리 이혼 조정조서.” 이혼이라는 말에 고태빈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짜증 어린 어투로 말했다. “서규영, 너 언제까지 이럴 거야?” 고태빈은 서규영과 이혼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회사 상장을 앞두고 이혼하면 큰 영향이 미치게 될까 봐 걱정돼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서규영의 친정이 엄청난 자본을 가진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서규영의 아버지 서진석은 투자업계의 거물이라 수많은 유망 기업들의 실질적인 지배자이며 자산도 상당했다. 그렇게 대단한 장인어른이 있는데 어떻게 서규영과 이혼한단 말인가? 서규영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얘기했잖아. 이혼하자고.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우리 10년쯤 봤는데 아직도 내 성격을 몰라? 난 한 번 결정한 건 절대 안 바꿔. 들어가자.” 말을 마친 뒤 서규영은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법원 앞에 선 고태빈은 심장이 쿵 내려앉음과 동시에 손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는 서규영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서규영은 고집이 아주 강했다. 모두가 반대할 때 그와 결혼한 것만 봐도 그랬다. 당시 서규영의 친구, 부모님, 친척 모두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고 다들 서규영에게 고태빈과 헤어지라고 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고태빈은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고태빈은 솔직히 조금 긴장되었다. 그러나 서규영이 정말로 그와 이혼할 생각이었다면 법원이 아니라 당장 구청으로 갔을 것이다. 게다가 조금 전 서규영이 말했다시피 그녀는 조정조서를 작성하러 온 것이었다. 조정조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서규영이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쩌면 고태빈의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 거라고 판단하여, 법원 사람들이 그에게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그를 압박하기를 바라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고태빈은 또다시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서규영이 절대 자신을 떠날 수 없다고 믿었다. 서규영은 고1 때부터 그를 좋아했고 그 감정이 10년 동안 이어졌으니 절대 쉽게 마음을 접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서규영은 그를 은인으로 여겼다. 예전 일을 떠올린 고태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고태빈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서규영은 이미 조정실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조정위원은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온 걸 본 조정위원이 물었다. “두 분, 이혼하기로 결정하셨나요?” 서규영이 입을 열었다. “네. 이미 합의 봤으니 바로 조정조서 작성하면 됩니다.” 조정위원이 고태빈에게 물었다. “고태빈 씨, 고태빈 씨도 조정에 동의하신 건가요? 두 분 더 고민하실 필요 없으신가요?” 고태빈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서규영은 그를 법원으로 끌고 오면 그가 겁을 먹을 줄 알았던 것일까? “서규영,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타협하기를 바라지는 마. 그건 불가능하니까. 해은이는 돌아갈 곳이 없어. 게다가 지금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 해은이가 산후조리를 할 동안만 밥 좀 챙겨달라는 것뿐인데 겨우 그것 때문에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거야? 이번에 봐주면 넌 앞으로 더 막 나가겠지.” 조정위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태빈을 바라보았다. 겨우 말 몇 마디로 조정위원은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서규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안쓰러움과 연민이 가득했다. 그 뒤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인장이 찍힌 뒤에는 조정조서 등본과 송달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법원에서 나온 뒤 서규영은 비록 조금 슬펐으나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후련하고 가벼웠다. 그동안 자신을 옭아매던 보이지 않는 족쇄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반대로 고태빈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의 손에도 조정조서 등본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그의 사인과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고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겨우 이런 종이 쪼가리 때문에 그렇게 난리를 피운 거야? 집에 너무 오래 있어서 심심했어? 너도 이젠 일 시작해야겠다. 매일 집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이런 일을 벌이지.” 고태빈은 조정위원이 아내에게 신경을 좀 쓰라고 자신을 설득할 줄 알았으나 조정위원은 그러지 않았다. 솔직히 고태빈은 조금 실망했다. 서규영은 설명하기 귀찮았다. 고태빈은 그 조정조서가 뭘 의미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이혼 방법 중에는 협의이혼과 소송이혼 외 조정이혼이 있는데 조정이혼일 경우 양측 모두 동의하면 이혼숙려기간을 피할 수 있었다. 정민서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오늘 두 사람이 법원에서 조정이혼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금 그들의 손에 들린 조정조서는 소송이혼에서의 판결문, 협의이혼에서의 이혼의사확인서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 그 말인즉슨 지금부터 서규영과 고태빈은 정식으로 이혼하여 더는 부부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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