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주호림의 행동을 본 주석호는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서른을 앞둔 태자가 아이처럼 유치하게 굴다니.’
북양에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주석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런 생각들을 지웠다.
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결국 주성훈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주석호는 곧장 군영을 떠났다.
내일 대결하다가 절체절명의 순간이 온다면 주석호가 직접 나설 것이다.
주호림은 주석호가 따라오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하찮아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그의 여섯째 아우는 오늘 여러 차례 큰 활약을 했다.
주석호가 떠나서 다행이었다. 그가 있었다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없었다.
‘대결이 끝난 뒤면 저 골칫덩이를 제거해야겠어.’
주호림은 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태자 전하, 내일 저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이 여덟 명 중에서 고를 것이옵니다.”
주성훈이 주호림을 향해 소개했다.
주호림은 자신을 향해 예를 갖추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
“어서 일어나거라. 내일의 승패는 너희들에게 달려 있다.”
“태자 전하의 기대에 꼭 부응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의 흥분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본 주호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이곳에 온 보람이 있었다.
게다가 여덟 명의 병사들 모두 많은 훈련을 받은 자들 같아 보여서 남양을 상대하기엔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주호림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아우야, 이리 와보거라. 이 형님이 너한테 할 얘기가 있다.”
주성훈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주호림은 태자가 된 뒤로 ‘본궁’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는데 그랬던 그가 갑자기 자신을 형님이라고 칭하니 아주 이상했다.
주성훈은 주호림을 따라 옆으로 자리를 옮긴 뒤 말했다.
“태자 전하, 얘기하시옵소서.”
콜록.
주호림은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이내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우야, 내일 대결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
주성훈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한 명을 보냈더니 또 한 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일의 대결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주성훈은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태자 전하, 송구하지만 그건 아니 될 것 같사옵니다.”
주호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성훈의 거절에 주호림은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주호림은 눈알을 굴리다가 말했다.
“아바마마의 뜻인데 따르지 않을 것이냐?”
“아바마마의 뜻이라고 하였사옵니까?”
주성훈은 깜짝 놀랐다.
주호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성훈은 난처한 기색을 드러내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주호림은 자신의 계략이 먹히자 매우 기뻐하면서 곧장 군영을 떠나 처소로 돌아갔다.
그는 이 일을 확실히 해둘 생각이었다.
‘내일 나도 공을 세우게 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주석호가 태극전에 도착했다.
대전 안에는 어제 태극전에 왔던 사람들 모두 있었다.
남양 사신들이 있는 구역에는 평서왕 양해승이 군장을 입은 외에 다른 네 명도 똑같이 군장을 입고 있었다.
주석호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용병왕이었던 주석호는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본 사람은 십 년이 흐른다고 해도 어느 날,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지를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양의 두 황자들 뒤에 있는 네 명의 무사들 중 한 명은 완전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제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기운을 숨기고 있는데 그 기운이 다른 세 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점이었다.
그가 바로 남양에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일까?
주석호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남양이 그들의 땅을 걸며 내기를 제안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하여 온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석호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주인은 바로 방청옥이었다.
주석호는 미소를 지으며 방청옥을 향해 눈을 찡긋거렸고, 방청옥은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지더니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주석호의 시선을 피했다.
‘내가 왜 이러는 것이지? 왜 자꾸 나도 모르게 저 호색한에게 시선이 가는 것일까?’
방청옥의 심장이 쿵쾅댔다.
어제 집으로 돌아간 뒤 방청옥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주석호와 함께 밤을 보냈던 기억이 떠오르거나, 주석호가 냠양의 재인을 꺾고 압승한 멋진 모습이 떠올랐다.
자꾸만 떠오르는 주석호의 모습에 방청옥은 자신이 광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이상했다.
그녀는 속으로 주석호를 욕하면서 한 편으로는 주석호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 전 주석호를 보았을 때는 심란했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가 설마 저자를...’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때문에 방청옥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생각을 지웠다.
이때 내관이 큰 목소리로 외쳤고 무황과 태자 주호림이 태극전 안으로 들어왔다.
“무황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다들 일어나거라.”
예를 다한 뒤 일어난 사람들은 무황 곁에 앉아 있는 태자가 군장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군장을 입은 태자는 아주 용맹해 보였다.
주호림은 황제의 곁에 앉은 뒤 곧바로 방청옥 쪽을 바라보았고, 방청옥이 두 볼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군장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것이로구나!’
주석호는 군장을 입고 있는 주호림을 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마 오늘 대결에 태자가 직접 나설 생각인 걸까?
“청주왕, 남양에서 고른 이들이 바로 저 다섯 명이오?”
무황이 양만수에게 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양만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북양에서는 어떤 자들을 내보실 예정이옵니까?”
태자 주호림이 웃으며 말했다.
“청주왕,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우리 북양의 예법에 따르면 갑옷을 입은 자들은 황궁에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금 밖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설 때가 되어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요.”
“그렇군요.”
양만수는 싱긋 웃었다.
“태자 전하와 이황자 전하께서도 군장을 입고 계신 걸 보니 설마 두 분께서도 직접 참여하시려는 것이옵니까?”
“하하하하...”
주호림은 크게 웃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대결이 시작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양만수는 더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켜보도록 하겠사옵니다.”
사실 대전 안에 있던 북양 사람들은 내심 들떴다.
남양에서는 평서왕 한 명만 나서는데 북양에서는 황자 두 명이 나서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중에는 태자도 있었다.
그 점만으로도 그들은 남양보다 우위에 있었다.
무황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호림을 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준비가 된 듯하니 자리를 옮기겠소.”
반 시진 뒤, 황궁의 공터.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주석호가 자리에 앉자 칠황자 주남기가 그에게 다가갔다.
“형님, 저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주남기는 궁금한 듯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주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남양에서 내보낸 자들이 어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면 북양은 틀림없이 이겼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변수가 하나 생겼으니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흥! 역시 쓸모없는 놈이구나. 상대방의 사기를 돋워주고 자신의 기세를 꺾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옆에서 독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바로 오황자 주평진이었다.
어제 태극전에서 쫓겨났던 그는 겨우 하루 만에 궁중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 주평진은 주석호가 죽도록 미웠다.
주석호는 미친개처럼 구는 주평진을 힐끗 본 뒤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미친개와 상종하지 않았다.
대신 일반적으로 기회가 있을 때 미친개를 때려죽였다.
주평진은 주석호가 대꾸하지 않자 주석호가 두려워하는 줄 알고 주석호의 앞으로 걸어가서 이를 악물며 말했다.
“왜? 아무 말도 못 하겠느냐? 솔직히 얘기하마. 잠시 뒤 태자 전하께서 나설 것이다. 태자 전하께서 승리를 거머쥐시면 나는 너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