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주변 사람들은 주평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고 호기심이 강한 주남기는 몇 마디 들었다.
특히 태자도 나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태자 전하께서도 나선다고 하셨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말을 똑똑히 들었고 북양 대신들은 매우 흥분했다.
“태자 전하께서 나선다고 합니다!”
“역시나 맞았군요!”
“그렇지 않으면 태자 전하께서 무엇 때문에 군장을 입고 계셨겠습니까?”
“역시 우리 북양의 태자 전하답군요. 아주 멋지십니다!”
쏟아지는 칭찬들에도 주호림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호림은 상황을 살펴보다가 나갈지 말지 결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나선다는 소식을 대체 누가 누설한 것일까?
사람들을 쭉 둘러보던 주호림은 오황자 주평진을 보는 순간 곧바로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었다.
어젯밤 주호림은 주평진이 어제 그를 대신하여 사정하지 않은 일에 화가 났을까 봐 그를 달래주려고 오늘 자신이 나설 거라는 사실을 주평진에게 전부 얘기해 주었다.
그런데 주평진은 잠깐을 못 참고 모든 걸 얘기했다.
혹시라도 상황이 좋지 않다면 어떻게 발을 뺀단 말인가?
주호림이 두려워하던 일이 끝내 벌어졌다. 평서왕 양해승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 직접 나서신다니 형님 추측이 맞았군요.”
양해승은 주호림을 향해 커다란 주먹을 들어 보였다.
“태자 전하와의 대결이 굉장히 기대되옵니다!”
무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제 오후, 태자가 갑자기 그를 찾아와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그 계획대로라면 만약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태자는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태자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멍청한 오황자 때문에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무황은 주평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주평진은 주남기가 큰 목소리로 태자가 직접 나선다고 말했을 때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게다가 무황까지 자신을 노려보니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번에는 무황이 입을 열 필요도 없이 황자를 보호하는 호위무사가 앞으로 나서며 주평진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 일은 그렇게 넘어갔다. 남양 사신들이 있는 쪽에서 사람 한 명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소신 신정익, 북양 장수와 한번 겨뤄보고 싶사옵니다.”
주석호는 신정익이 등장하자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신정익이 바로 오늘 갑자기 나타난 고수였는데 그 자리에 있는 북양 사람들 모두 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무황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북양의 용사를 불러들이거라!”
이내 궁문 밖에서 군장을 입은 병사 한 명이 달려왔고, 그가 예를 갖추기도 전에 무황이 손을 들며 말했다.
“예는 거두거라. 짐을 위해 우리 북양의 실력을 보여주거라!”
“명 받들겠사옵니다!”
그 병사는 입장한 뒤 남양의 신정익과 대치했고 순간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싸움이 시작되었다.
쿵!
두 사람은 맹렬하게 격돌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북양의 병사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뭐지?”
단 한 수만에 처참히 패배했다.
북양 사람들은 대경실색했고 주석호의 눈빛은 심각해졌다.
신정익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석호가 살던 세상에서 세계 최고의 용병팀의 팀원이 될 수 있었다.
남양은 어디서 저런 고수를 구한 걸까?
“무황 폐하, 첫 판은 저희 남양이 승리하였는데 저희의 승리를 공표해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청주왕 양만수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북양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양만수는 사실 모든 것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첫 판은 남양이 승리하였소.”
무황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좋은 대결이었소.”
신정익은 저 멀리 이미 정신을 잃고 기절한 북양 병사를 향해 예를 갖춘 뒤 다시 중앙으로 걸어갔다.
주성훈을 힐끗 본 무황은 주성훈의 표정이 매우 심각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태자 주호림을 쳐다보니 주호림은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이 잿빛이었다.
무황은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멈출 방법은 없었다.
“다음 병사를 불러들이거라.”
무황은 이번에 높이 외치지 않고 옆에 있던 내관에게 말했다.
내관은 눈치가 빨랐기에 곧장 밖으로 나가 두 번째 병사를 불러들였다. 동시에 그 병사에게 상대방이 아주 강하니 절대 정면충돌하면 안 된다고 했다.
두 번째 병사는 대결이 시작된 뒤 계속해 위치를 조정하며 신정익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신정익이 움직이는 순간, 북양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입이 떡 벌어졌다.
신정익은 마치 귀신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북양의 병사를 따라잡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번째 병사 또한 처참히 패배했다.
순간 장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북양 사람들은 이러한 결과에 전부 깜짝 놀랐다. 두 판을 싸웠는데 북양 쪽에서는 반격 한 번 하지 못했다.
아주 처참한 패배였다.
잠시 뒤, 세 번째 병사도 참패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연달아 세 판을 진 데다가 신정익은 딱 세 번 공격을 했다.
북양 병사들은 신정익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결국 침묵 속에서 주성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판에는 제가 나서겠습니다.”
주성훈의 등장에 수심 가득하던 북양 사람들은 다시 한번 기운을 차렸다.
주성훈은 북양에서 전쟁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자였기 때문이다.
“이황자 전하, 조심하십시오!”
“형님, 꼭 이기셔야 합니다!”
기대 어린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 주성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신정익의 맞은편에 섰다.
이때 갑자기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서왕 양해승이 신정익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신 형, 북양의 이황자 전하에게 우리 남양 제일 고수의 실력을 보여주시오!”
주성훈을 응원하던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남양 제일 고수라니?
‘당했다!’
신정익은 남양의 민간에서 선발된 최강자로 일반 병사들은 그와 1대1로 싸우면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무황은 주먹을 꽉 쥐며 짙은 분노를 억눌렀다.
‘이런 비열한 수단을 쓰다니!’
옆에 있던 주호림은 몰래 안도했다.
이번에 북양은 틀림없이 질 것이다.
다행히 주호림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겠다고 가장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가장 먼저 나섰다면 공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무황의 노여움 어린 표정을 본 주호림은 눈알을 굴리다가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아바마마, 만약 여섯째가 경솔히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북양이 이렇게 참패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옵니다.”
무황은 그 말을 듣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석호를 노려보았다.
어제 시 짓기를 잘해서 주석호에게 호감을 품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 호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신정익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황자 전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황이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주성훈은 이미 심장을 움켜쥐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무런 반격도 못하고 있었다.
장내가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북양 사람들은 그 순간 깊은 절망을 느꼈다.
이황자조차 겨우 다섯 수밖에 버티지 못했다.
‘졌다. 모주를 잃었다.’
“신 형은 역시 대단하군!”
청주왕 양만수는 우쭐해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곧이어 태자 주호림을 바라보았다.
“태자 전하, 이제 태자 전하만 남으셨군요.”
주호림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저... 저는...”
주성훈마저 졌는데 그가 어떻게 나선단 말인가?
양만수는 어제 당했던 걸 되갚아주고 싶었던 것인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시옵니까? 태자 전하, 혹시 그냥 패배를 인정하실 것이옵니까? 아니면 지는 것이 두려워 감히 나서지 못하는 것이옵니까?”
양만수가 계속해 태자를 몰아붙였고 북양 사람들은 체면을 구기게 되자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양만수를 바라보지 못했다.
이때 방청옥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주석호를 바라보았다.
오늘 대결에서 참패한다면 가장 먼저 문책당할 사람이 바로 주석호였다.
바로 이때, 방청옥은 주석호가 자신을 향해 환히 웃어 보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았다.
“북양의 다섯 번째 출전자는 바로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