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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주호림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가 무황이 은근히 눈치를 주고 나서야 뒤늦게 자리에 앉았다. 주호림이 추태를 부리자 주석호는 한 가지 소문을 떠올렸다. 주호림이 지금껏 혼인하지 않은 이유는 3년 전 태자소부를 따라 청풍학당에 갔다가 그곳에서 알게 된 여인에게 푹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여인이긴 하나 그녀는 채시관으로 임명되어 일찍이 천하를 누비러 떠났다. 북양은 주석호가 살던 지구의 봉건 왕조와 달리 여인이 글공부를 하거나 관직에 오르는 것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북양의 조정 문무 대신들 중에 여인이 십여 명 정도 있었다. 주석호는 그러한 점에 있어 무황을 꽤 높이 평가했다. 주호림이 3년 이상 마음에 품고 있었던 여인이 바로 정승의 딸이었던 것일까? “들라 하라.” 무황이 입을 열었다. 곧이어 전각 밖에서 청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수려한 외모와 남다른 분위기, 살짝 올라간 눈꼬리는 매력적이었고 긴 머리카락은 청색의 비녀로 틀어 올린 뒤 한쪽으로 내려뜨려 희고 가는 목선을 드러냈다. 여인이 입을 열자 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청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신 방청옥, 폐하를 뵙사옵니다.” 순간 모든 이들의 이목이 방청옥에게 집중되었다. 방청옥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예를 갖추자 사람들의 시선 또한 방청옥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주호림은 방청옥에게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고 주석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석호는 여인의 미모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방청옥이 바로 어젯밤 그와 함께 청루에서 밤을 보낸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저 여자가 정승의 딸 방청옥이라고?’ 주석호는 넋이 나갔다. 취선루 주인장은 대체 무엇 때문에 방청옥을 그의 침상으로 보낸 것일까? 주석호는 그것이 모종의 음모일 것이라는 걸 바로 눈치챘다. 그러나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여겨져 홀대받는 육황자를 해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방청옥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다. “일어나거라.” 무황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네가 천하 방방곡곡을 누비며 우리 북양의 풍모를 기록하고, 탐관오리들을 감시하는데 아주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오늘 보니 과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기품 또한 남다르구나. 이만 자리에 앉거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방청옥은 예를 갖춘 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내 오늘 아침에 만났던 그 무뢰한을 떠올렸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몸이 이리 쑤실 리도 없었고 황궁 연회에 늦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청옥은 자리에 앉아 시선을 들었고 그 순간 미소가 굳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 금수가 앉아 있었다. 주석호 또한 마침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둘 다 서로의 눈동자에서 난감함을 보아냈다. 방청옥은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오늘 아침의 그 호색한이 정말로 황자였다니!’ 게다가 온갖 향락에 빠져 살며 주색을 즐기는 황자라면... 누구일지는 뻔했다. 방청옥은 수심이 깊어지며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그녀는 도성 근교의 문인들의 시회에 참가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사내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되었다. 게다가 그 사내가 악명이 자자한 육황자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방청옥이 이성을 잃고 추태를 보일 뻔할 때쯤 옆에서 사내의 듬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옥아, 오랜만이다. 네게 술 한 잔 올리겠다.” 방청옥은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술잔을 들었다. “태자 전하를 뵙사옵니다.” “청옥아, 너와 나는 한때 청풍학당의 동문이었는데 그렇게 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 주호림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당시 너는 겨우 열여섯이었는데 학당에 들어오자마자 박학다식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었지. 나는 그때의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보다 겨우 몇 살 더 많을 뿐이니 너만 괜찮다면 자윤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된다.” “제...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사옵니까?” 방청옥의 두 뺨이 붉어졌다. 그녀의 모습에 주호림은 기분이 좋아졌다. 자윤은 주호림의 자였기에 그를 자윤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애틋한 행위였다. 그들의 맞은편에 앉은 주석호는 안절부절못했다. ‘왜 나한테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난 거지?’ 이 몸에 영혼이 깃들자마자 큰형님의 아내가 될 여인과 잠자리를 가지다니. 방청옥을 3년 동안 마음에 둔 주호림이 그 사실을 안다면 아마 그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이곳은 싸움을 잘하는 자가 승리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황권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였다. 미래에 황제가 될 태자 주호림에게 주석호를 제거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주석호의 싸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총과 같은 무기가 없는 이 시대에서 오로지 두 주먹으로 상대방과 싸워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저 여인이 명성을 중요히 여겨 그 일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기만을 바라야지...’ 주석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젖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북양의 술 빚는 기술은 상당히 조잡하여 자연 발효된 쌀로 빚은 술이나 과일주가 대부분이라 도수가 높지 않고 신맛과 쓴맛이 강한 편이며 끝맛만 살짝 달 뿐이라 술을 마셔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좋은 술을 마시려면 방법을 생각하여 증류 설비부터 제조해야 할 듯싶었다. 주석호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영리한 칠황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형님도 설마 저 방 낭자를 좋아하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저 낭자를 바라보면서 홀로 술을 마시는 것입니까?” 주석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주석호의 옆에 앉아 있던 오황자 주평진이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석호가 무슨 자격으로 승상의 딸을 마음에 품는단 말이냐? 석호야, 네 눈을 잘 단속하거라. 방 낭자는 형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신 여인이다. 아바마마께서 혼인하라고 명을 내리신다면 바로 혼례를 올릴 것이다. 감히 주제넘은 생각을 한다면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그리 알거라.” 오황자인 주평진은 권세가 약한 편이었는데 평소 주호림 앞에서 알랑거리며 그의 덕을 보려고 했다. 주석호는 그의 말을 듣고 피식 웃을 뿐이었다.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결국 미인을 얻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요.” 주호림은 지금 방청옥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나 주석호는 어제 이미 방청옥과 함께 밤을 보냈다. 함께 밤을 보낸 이상 방청옥은 그의 여인이 된 것과 다름없었다. 주석호의 몸에서 평소의 무뢰한 같은 기운이 풍겼다. 사실 주석호는 황자로 살면서 전생과 달리 평온한 일상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형제들은 그가 편히 지내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듯했다. 대체 누가 몰래 음모를 꾸며 방청옥을 그의 곁으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청옥의 신분을 알고 그녀와 주호림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는 자라면 분명히 황실 구성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황위 계승 쟁탈전을 벌일 황자들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나를 이 판에 끌어들였으니 기꺼이 상대해 줘야겠지.’ “네가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주석호의 말을 주평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이를 악물면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기 남양의 사신들이 보이느냐? 이번에 어쩌면 남양의 공주와 혼인할 황자를 고르게 될지도 모른다.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미리 얘기해주마. 남양의 공주와 혼인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 바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너다. 매일 주색에 빠져 살아 우리 황실 명성을 더럽히는 네놈이 남양의 공주와 혼인한다면, 그것이 네 평생 최고의 공로가 될 것이다.” 주석호는 그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황제가 그를 불러들인 이유가 바로 이 일 때문일 것이다. 북양과 남양은 예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만약 정략혼을 하게 된다면 주석호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다. 게다가 남양 공주라는 시한폭탄이 바로 옆에 생기게 된다. 아무 일도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남양 공주가 군사 기밀 같은 것을 털려고 한다면 주석호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다. ‘저런 사람이 내 아버지라니.’ 그 순간, 남양 사람들 중에서 옅은 색의 장포를 입은 준수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를 갖추면서 말했다. “폐하, 술도 어느 정도 들어갔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사실 저는 이 연회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사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북양 최고의 재녀라 불리는 방 낭자를 뵈니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군요. 저는 남양 최고의 재인 남하택이라고 하옵니다. 저와 방 낭자는 천생연분임이 틀림없사옵니다. 그리하여 감히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청을 올리옵니다. 남양과 북양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하여 저와 방 낭자의 혼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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