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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흥, 거만하군. 그렇다면 어디 한번 호방함이 느껴지는 시를 지어보시오!” 그 말을 한 사람은 북양 황실의 이공주 주소현이었다. 교만한 성정의 주소현은 남하택이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물론이지요!” 남하택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자신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다들 한 번 들어보시지요.”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모두 모여 바다 끝에 걸린 보름달을 바라보네. 하늘이 끝나는 그곳까지 달빛은 공평하게 만인을 비추네.” 글만 따지자면 방청옥이 지은 시보다 덜 아름다웠으나 시에 담긴 분위기만큼은 훌륭했다. 맑은 가을 하늘과 바다 위로 솟은 보름달, 그리고 그 보름달이 내뿜는 환한 빛이 세상 곳곳, 만인을 밝혀주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남하택의 시에 북양 황실 사람들 모두 침묵에 잠겼다. 남양 쪽의 청주왕 양만수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시군! 이 세상 그 어디든 달빛이 비추는 곳에는 단란함이 존재하는 법. 제가 보기에는 남 형이 이긴 것 같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소현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청옥이가 지은 시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남하택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추석은 가족끼리 단란히 모이는 날이니 이 천하의 모든 가정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방 낭자께서 지은 시는 비록 아름답긴 하나 월궁의 항아를 읊조리며 남녀 간의 정만을 노래했으니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방청옥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뒤처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구가 아무리 유려하다고 해도 조정에서는 큰 기상을 노래해야 더 많은 이들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 “무황 폐하, 혹시 약조를 어기시려는 것이옵니까?” 양만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청옥과 방청옥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방 정승께서는 문학 대가시니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잘 아시겠지요?” 방현석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딸이 졌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딸을 북양에서 멀리 떨어진 남양으로 시집보내야 했다. 게다가 북양과 남양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그곳으로 보낸다면 어쩌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무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바라보며 실망을 느꼈다. 이 넓은 북양 땅에서 자란 이들이 작디작은 남양의 재인 한 명을 이기지 못하다니. 게다가 황제의 자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장 훌륭한 선생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며 오경육예를 배웠다. 그런데 그들 중 그 누구도 감히 남하택과 대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호림은 분통이 터졌다. 방청옥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도와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뜻밖의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주석호는 입가에 다과 부스러기를 묻힌 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겨우 그런 졸문을 지어 놓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아주 월궁까지 닿겠소.” 주호림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주석호가 왜 갑자기 나선 것일까? 주석호 옆에 있던 주명철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욕했다. “주석호, 정신이 나간 것이냐? 너의 그 형편없는 실력으로 뭘 할 수 있다고 나선단 말이냐? 괜히 나섰다가 망신당하면 남양 사람들이 그 기회를 틈타 우리 북양 황실을 조롱할 것이다. 그러니 얼른 돌아와서 앉거라!” 일곱째 주남기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얼른 돌아오세요. 형님은 저자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 주석호의 평소 실력을 알고 있었다. 과거 주석호는 학당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밤새 엉겨 붙는다는 내용의 저급한 시구를 읊은 전적이 있었다. 방청옥은 내심 놀랐다. 이런 순간에 앞으로 나선 사람이 주석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무뢰한인 주석호는 분명히 저속하고 천박한 말들만 쏟아낼 테니 나서봤자 비웃음만 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되돌이킬 수 없었다. 대전 안에서 남하택이 시선을 들어 주석호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했더니 명성이 자자하신 육황자 전하셨군요!” 북양에 오기 전, 남양 사람들은 북양 황실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았었기에 당연히 쓰레기라고 소문난 육황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육황자 전하께서는 아주 자신만만하시군요. 그렇다면 절창을 기대해 보아도 될는지요?” 누가 봐도 비꼬는 것이었으나 뜻밖에도 주석호는 웃으면서 맞받아쳤다. “그렇소. 가히 절창이라고 할 만하오! 이 시구를 듣는다면 남 형은 아마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걸작이라며 칭송하게 될 것이오!” “좋습니다!” 남하택은 경멸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목청을 높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 함께 들어보시지요. 글공부를 많이 하신 육황자 전하께서 북양 황실을 대표하여 과연 어떠한 명작을 읊으실지 말입니다!” 남하택은 겨우 말 몇 마디로 북양 황실까지 끌어들였다. 북양 황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황자 주성훈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저 바보 같은 놈,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다니. 돌아가면 저놈의 다리를 분질러야겠어!” 삼황자 주명철은 언제나 차분했고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섯째 아우는 정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구나.” 그의 곁에는 그와 한배에서 태어난 아우 사황자 주덕배가 있었다. 주덕배는 부채를 살살 흔들면서 코웃음을 쳤다. “석호는 학당에서 추석에 뜨는 보름달이 전 같다고 한 적도 있지요. 설마 그런 시구로 남 형과 겨루려는 건 아니겠지요?” 방현석은 딸의 귀에 대고 뭔가 속삭였다. 다들 각자 속셈이 있었지만 주석호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잘 들으시오.” 사람들의 눈빛들을 무시한 채 주석호는 목청을 가다듬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던가? 술잔을 들어 하늘에 묻노라. 그러나 하늘 위 궁전에서도 오늘 밤이 어느 때인지 알지 못한다네.” 그의 시구에 대전 안이 고용해졌다. 모든 조롱과 비아냥, 비웃음들이 사라졌고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으로 주석호를 바라보았다. 주석호는 계속하여 시를 읊었다. 그는 시를 한 구절씩 읊을 때마다 남하택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싶지만 월궁의 추위를 견디지 못할까 두렵네. 달빛 아래 그림자와 춤추니 이곳이 인간 세상이 아닌 것만 같네.” “붉은 누각, 낮은 창문, 그 사이로 비춰들어 온 달빛. 밝은 달이 한을 품지도 않았을 텐데, 어찌하여 이별의 순간에만 둥글어진단 말인가?” “사람에겐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존재하듯 달도 어둠과 밝음, 차고 이지러짐이 있으니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네. 다만 모든 이들이 오래도록 함께하며 아름다운 달빛을 볼 수 있기를.” ... 주석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대전 안에는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가 읊은 시구는 사람들의 심금을 오랫동안 울렸다. 주석호의 시구는 마치 꿈과 같은 장면을 그려냈다. 그리고 주석호가 호소한 감정은 마치 은은한 달빛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천천히 적시며 많은 공감과 상상의 나래를 불러일으켰다. 주석호의 시는 방청옥의 시만큼 유려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단란한 추석을 노래한 남하택의 시만큼이나 호방하고 기세가 넘쳤다. 게다가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까지 노래하여 그 절절함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닿았다. 실로 명작이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이런 거작을 만들 이가 또 있을까? “어떻소?” 주석호가 질문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절창이라고 생각하시오?” 주석호는 그렇게 질문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주석호에게는 용병 특유의 사람들을 죽이면서 축적된 경험으로 쌓인 사람을 압박하는 은근한 살기가 있었다. 남하택은 일개 서생이었기에 겁을 먹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게다가 난생처음 들어본 엄청난 대작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몸에 힘이 풀렸다. “말도... 말도 안 됩니다! 당... 당신은 무능력한 육황자 전하가 아닙니까? 이런 명작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혹시 서책에서 베낀 것은 아닙니까?” 남하택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양만수가 말없이 손을 젓자 곧바로 호위무사 두 명이 얼이 빠진 남하택을 데리고 물러났다. 남하택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패배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다. 서책에서 베낀 것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존재했다면 이미 온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쳤을 테니 말이다. 남하택이 남양 최고의 재인으로서 그런 말을 했으니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남 형, 약조에 따라 앞으로는 영영 붓을 놓는 게 좋겠소.” 주석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잔뜩 기가 죽어 있던 남하택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피를 왈칵 토하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린 주석호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자신의 아버지 무황을 마주 보았다. “아바마마, 제게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조금 전 방 낭자는 자신의 재능을 뛰어넘는 자라면 기꺼이 혼인할 수 있다고 하였사옵니다. 조금 전 절창을 읊은 저라면 가히 천하제일의 재인이라고 불릴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정승의 딸 방 낭자와 혼인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아바마마, 부디 저와 방 낭자의 혼인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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