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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검진은 순조로웠고 아기도 건강했다. 다만 놀랐던 것은 아기가 하나가 아니라 두 명이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임윤슬에게 말했다. “이제 임신 3개월 차라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예요. 부부관계도 무리는 아니지만 쌍둥이니까 조심해야 해요. 절대 남편이 제멋대로 굴게 두면 안 돼요.” 그 말에 임윤슬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말까지 더듬었다.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오늘 검진은 끝났어요. 다음 달에도 잊지 말고 오셔야 해요.” 결과지를 들고나와 로비로 향하던 임윤슬은 무심결에 배를 어루만졌다. 그 안에 두 작은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마 조금만 지나면 움직임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임윤슬이 막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순간 앞에서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유난히 낯익었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는 공지한을 닮아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따라나섰으나 병원 출입구를 벗어나자 두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공지한이 일찍 돌아왔다면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병원에서 마주친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콜택시를 불러 저택으로 돌아왔다. 텅 빈 집을 마주하자 왠지 처음으로 서글픔이 밀려왔고 아마 임신한 탓에 더 예민해진 것이라 여겼다. 지난 3년간 혼자 집에 있던 시간이 아주 많았지만 윤하영이 돌아온 뒤로 임윤슬은 불안해졌다. 혹시 언젠가 공지한이 돌아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3년 기한 끝났으니까 이혼하자.” 그러고 난 뒤 이혼서류를 내밀며 사인을 요구할까 두려웠다. 남의 행복을 빼앗듯 얻은 행복은 금세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임윤슬은 공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몇 시쯤 집에 오는지 묻고 미리 저녁을 준비해두고 싶었다. 샤워한 뒤 침대에 앉아 그의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들려온 건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임윤슬 씨? 저예요, 윤하영이에요. 지한이는 지금 샤워 중인데 무슨 일 있으세요? 저한테 말씀해주시면 제가 대신 전해줄게요.” “아뇨. 괜찮아요.” 임윤슬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목소리로 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꽉 쥔 채 멍하니 침대에 앉았다. 알고 보니 공지한은 이미 돌아왔고 지금 윤하영과 함께 있었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며 이불을 적셨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공지한이 3년이 끝났다며 이혼을 요구해도 자신은 웃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한 뒤 쿨하게 떠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 걸까. ... 다음 날 아침, 잠을 설친 탓에 늦게 일어난 임윤슬은 계단을 내려오자 거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둔 공지한이 보였다. 언제 돌아왔는지, 얼마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임윤슬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발소리를 들은 공지한은 고개를 들었는데 눈은 가득 충혈되어 있었다. 임윤슬은 그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왔어요? 아침은 먹었어요? 지금 해줄게요.” 공지한은 몸을 소파에 기대며 자세를 바꾸었다. “아니야. 만들지 마. 이리 와.”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임윤슬은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혼나는 듯한 학생처럼 앉아 있었다. 공지한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할 말이 있어.” 임윤슬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어젯밤 내내 울어 눈은 다소 빨갛게 부어버렸지만 마음은 이미 각오가 끝난 상태였다. 3년의 계약은 이제 보름도 남지 않았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공지한은 눈가가 붉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또 괜한 드라마를 보고 감정 이입한 건가 싶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짜증이 섞인 듯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러자 임윤슬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이혼 얘기인가요?” 그 말에 공지한은 순간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비록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가슴 한가운데 날카로운 흉기가 꽂힌 듯한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임윤슬은 소파를 꽉 움켜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픔을 억누른 채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절차는 언제 밟을 건가요?” 훔친 행복은 결국 돌려줘야 했고 사랑받지 못한 쪽이야말로 비참한 사람이었다. 임윤슬은 알고 있었다. 공지한은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이미 입 밖에 꺼낸 이상 더는 공씨 가문 며느리 자리를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되었고 윤하영에게 이 자리를 돌려줘야 했다. 공지한은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이틀 안으로 하자. 변호사한테 협의서 준비하라고 할 테니까 사인받으러 올 거야. 위자료는 최대한 많이 챙겨줄게. 이 저택도 당신 거고 시내에 아파트 한 채도 줄게.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 외에 200억 더 얹어줄게. 그리고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말해도 돼.” 임윤슬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햇살은 유난히도 눈부셨고 눈이 뻑뻑하게 아렸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조금 나은 듯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공지한을 마주했다. “특별히 바라는 건 없어요. 이 집도 필요 없고요. 전 아마 고향으로 돌아가 살 것 같아요. 공기도 좋고 익숙하기도 하니까요. 돈도 그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 그냥... 2천만 원이면 돼요. 지금은 일도 없고 저축한 돈도 할아버지 치료비로 다 썼거든요. 2천만 원도 제가 빌리는 거로 할게요. 나중에 돈 벌게 되면 갚을게요.” “고향에 돌아가도 상관없어. 이 집이 필요 없다면 현금으로 정산해서 줄게. 빌린다느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마. 애초에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네가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니까.” “그럼 변호사가 협의서를 준비하면 연락 주세요. 최대한 빨리 짐을 싸서 나갈게요.” “서두를 필요 없어. 난 당분간 이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네가 원할 때까지 있어도 돼.”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공지한이 떠난 후 임윤슬은 그대로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한참 후 핸드폰 벨 소리에 정신을 차렸는데 본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를 받자 익숙한 공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슬아, 고향에서 돌아왔니? 오늘 저녁은 이리 와서 이 할애비랑 먹자꾸나. 못 본 지 꽤 오래됐는데 할애비가 많이 보고 싶었어.” 공대훈의 다정한 목소리에 임윤슬은 마음이 한결 나아졌고 정말 떠날 거라면 가기 전에 공대훈을 꼭 뵈어야 했다. “네, 할아버지. 택시 타고 갈게요.” “지한이는 아직도 안 왔니? 쯧, 아내를 이렇게 내버려 두고 뭐 하는 짓이람.” 공대훈은 공지한을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왔다. “할아버지, 지한 씨는 일 때문에 많이 바빠요. 제가 고향에서 싱싱한 채소랑 먹거리 많이 가져왔으니까 이따가 요리해 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내가 운전기사라도 보내줄까?” “아니에요. 제가 챙겨서 갈 수 있어요.” “그래, 오는 길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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