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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잠깐만 기다려, 금방 돌아올게.” 배성빈은 그렇게 말하곤 한가을의 팔을 붙잡아 현장을 떠났다. 한가을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갔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조용한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쾅. 문이 닫히자 배성빈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한가을을 바라보았다. “이혼... 안 하면 안 돼? 은주랑은 끊을게.” 한가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정말로 끊어낼 수 있었으면 날 여기까지 끌고 와서 이런 말은 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넌 이미 걔한테 마음이 갔어. 스스로 자각을 못 하고 있을 뿐이지.” 김은주는 시작일 뿐이다. 그 애가 아니었어도 앞으로는 박은주, 이은주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은주는 미국에 남기고 너랑은 아예 안 마주치게 하면 되잖아!” 한가을은 심장이 너무 아파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안 돼.” 배성빈의 눈이 점점 붉어졌다. “왜 이렇게까지 따져? 내가 떠나서 네가...” 찰싹. 한가을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세차게 갈겼다. “배성빈, 나 너 안 사랑해. 네가 날 배신한 그 순간부터... 우린 이미 끝이었어.” 순간 공기가 죽은 듯 가라앉았다. 배성빈은 고개를 비튼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봤다. 정신을 차린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손은 끝내 내려오지 못했다. 대신 떨리는 손을 천천히 주먹으로 말아쥐었다. “좋아. 이혼하고 싶다며? 그럼 해.” 그는 이혼 합의서를 낚아채듯 집어 들더니 내용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사인을 해 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 종이를 한가을의 얼굴에 확 내리쳤다. “이제 만족해?!” 한가을의 뺨이 욱신거리듯 아려 왔다. 그녀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천천히 주워 들었다. 그리고 마치 아주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듯 그 종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나 이제... 해방됐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배성빈의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거세졌다. “넌 반드시 후회할 거야.” 그는 말을 더 잇지 않고 등을 돌려 나가려 했다. “배성빈.” 그때 한가을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눈물 사이로 원망은 천천히 가라앉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듯 서글픈 미소가 번져 나갔다. “뒷산에 있는 단풍 숲... 한 번만 같이 걸어줄래?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해 줘.” 배성빈은 잠시 멈칫했다가 그녀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 “안 돼, 앞으로 네가 살든 죽든 나랑은 상관없어.” 한가을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렇게 끝나야 성빈이가 나중에 내 죽음을 알게 되더라도 조금은 덜 아프겠지.’ ... 밤이 깊었다. 한가을은 이혼 합의서를 끌어안은 채 붉은 단풍 숲으로 향했다. 밝은 달빛 아래 단풍잎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숲속을 한참 걷다 보니 시계는 어느새 11:58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문자를 적어 내려갔다. [성빈아, 널 사랑했던 걸 후회하진 않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분명 진짜였고 행복했던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처음부터 만나지 않을 거야. 지금 같은 결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거든.] 전송 버튼을 누른 순간 시계는 정확히 밤 열두 시를 가리켰다. 에테르나 궁의 종소리가 고요한 밤을 가르며 길게 울려 퍼졌다. 한가을은 화면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떠 있는 차단 표시를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달빛 아래에서 그녀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같은 시각, 어느 한 음침한 하수구 옆. “여기... 시신이 있어요!” 다급하게 접수된 신고의 내용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훼손된 한 여성의 시신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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