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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배성빈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로비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던 시선들이 일제히 그들에게로 쏠렸다. “가을아,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한가을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은 같아. 사인만 해. 그러면 서로 놓아줄 수 있어.” 배성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시선은 한가을의 얼굴에 박힌 듯 떨어지지 않았고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억눌린 감정이 스며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은주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녀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힘없이 늘어진 손으로 배성빈의 옷깃을 붙잡으며 울먹였다. “오빠, 저 내려줘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발 가을 언니랑 싸우지 마세요...” 그녀가 매달리며 우는 모습은 마치 일부러 한가을의 신경을 긁어대는 손길 같았다. 한가을은 그 의도를 모를 리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을 던졌다. “배 대표, 얼른 사인해. 옆에 있는 애인이 기다리고 있잖아.” ‘배 대표’라는 호칭에 배성빈은 이를 악물며 주먹에 힘을 줬다. “좋아, 한가을. 정말로 나랑 이혼하겠다는 거지? 후회하지 마.” 한가을은 눈을 꼭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절대 안 해.” “좋아, 그럼 이혼해.” 배성빈은 곧바로 김은주를 내려놓더니 한가을의 손에 들린 서류를 낚아챘다. 한가을은 치밀어 오르던 눈물을 삼켜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프런트 쪽을 향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펜 하나만 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아... 네!” 프런트 직원이 막 펜을 건네려는 순간 배성빈의 시선이 날아들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충혈된 눈빛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웠다. 직원은 흠칫 놀라 황급히 손을 거두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 펜이 없네요.” 그 순간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만년필 하나가 김은주의 가방에서 떨어졌다. “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김은주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허리를 숙여 펜을 주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한가을은 아무 말 없이 그 만년필을 주워 배성빈 앞으로 내밀었다. “자, 사인해.” 순간 모든 시선이 배성빈에게 쏠렸다. 누가 봐도 그는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방금 내뱉은 말들 역시 홧김에 튀어나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배성빈은 만년필을 내려다보다가 눈빛을 흉악하게 바꾸더니, 펜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김은주를 향해 소리쳤다. “누가 펜을 들고 나오랬어!” 김은주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오늘 중요한 계약 얘기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가져온 거예요.” 배성빈은 숨을 고른 뒤 한가을을 바라보며 이혼 합의서를 갈기갈기 찢었다. “이혼하려면 할 수 있어. 하지만 이 계약서는 변호사를 통해서 다시 쓸 거야. 그때 연락할게.” 한가을은 그 말이 변명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변호사 불러. 재산 한 푼도 안 받을게. 그냥 빈손으로 나갈 거야. 난 하루라도 빨리 너랑 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 그 순간 배성빈이 한가을의 손목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한가을 너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내 도움 없이 어떻게 살 건데? 그건 생각해 봤어?” 한가을의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이 고여 있었다. 그녀는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했잖아. 난 이미 죽었어.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다섯 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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