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정수아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나자, 최재현은 조금 전까지 하려 했던 질문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한편, 병실을 빠져나온 정서연은 곧장 간호사 데스크에 들러 몇 가지 당부를 남기고 약국으로 향했다. 약을 받아 든 그녀는 병실로 돌아가는 대신 약과 계산서를 간호사에게 맡기고 전달을 부탁했다.
간호사를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정수아는 곧바로 불쾌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언니가 더 이상 손자며느리가 아니더라도 옛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 병원비는 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말로 인해 정서연은 차갑고 냉정하며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비춰졌지만 정수아의 비아냥에도 최재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정수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서야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시계는 이미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병원 안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당직이 아니었기에 정서연은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퇴근하려 했다. 막 병원 건물을 벗어나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에 있던 차 한 대가 갑자기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그녀의 시야를 빛으로 가득 채웠다.
눈이 부신 빛에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데려다줄게.”
정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무시하고 병원의 문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차는 그녀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따라오며, 거절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병원의 출입문을 막 벗어난 순간 정서연의 발걸음이 멈췄다.
최재현은 차를 멈춰 세우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난치고 싶은 거라면 상대해 줄게.”
정서연은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넣은 채 싸늘하게 돌아보았다.
“장난이라니?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여긴 병원이야. 놀고 싶으면 정수아랑 같이 집에 가서 놀아.”
비꼬듯 내뱉은 그녀의 말이 최재현의 귀에는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다.
최재현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입술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완벽한 연기로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당신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겠지.”
“무슨 소리야?”
“당신 아직도 날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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