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대치가 이어지던 순간, 정서연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청진기로 최예진의 심박을 들었다. 그녀는 주치의보다도 빨랐다.
“쇼크 징후가 있어요!”
정서연은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소리쳤다.
“장비 준비해요!”
그러고는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고 있는 쪽을 향해 외치듯 말했다.
“관계없는 사람들은 당장 나가!”
순식간에 병실에는 발걸음 소리만 남았다. 이 상황에 감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같이 일한 지 수년이지만 누구도 정서연이 이렇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최재현조차 얼어붙어 서 있었다.
의료진만 남은 병실.
정서연은 창백한 안색의 아이를 바라보며 가슴이 솟구쳤다.
“예진아, 엄마 목소리 들려? 눈 좀 떠봐.”
그녀는 응급조치를 이어 가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어떻게든 혼절 상태의 딸을 깨워보려고 말이다.
20분쯤 지나 간호사가 환호했다.
“선생님, 심박이 정상이에요! 수치도 안정됐어요!”
힘이 빠진 정서연의 두 손이 떨렸다. 아이가 서서히 눈을 뜨는 걸 확인한 뒤에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모니터링 강화해요. 불안정하면 중환자실로 옮기고요.”
침대에 기대선 그녀는 목소리까지 떨렸다.
간호사가 달랬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선생님.”
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주르륵 흘렀다.
주변이 안도감으로 가득해도 그녀의 가슴은 아직 철렁였다.
“엄마...”
힘없이 중얼대는 아이가 한마디 더 했다.
“아파...”
“엄마가 알아, 예진아.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간호사들이 물러나자마자 최재현과 정수아가 달려왔다.
“예진이는 어때?”
등 뒤에서 다급한 최재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서연은 급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를 재우고 일어선 다음 말없이 손을 올려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짝!
조용한 병실에 맑게 울리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최재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정수아가 흥분해 그녀를 밀쳐냈다.
“언니, 왜 이래? 예진이 위급한 게 재현 오빠 탓은 아니잖아! 언니가 무슨 자격으로...”
끝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또 하나의 손바닥이 정수아의 뺨을 후려쳤다.
“둘이서 어떻게 놀든 상관없어. 근데 예진이한테 이런 일 또 생기면, 너희 둘 다 지옥에 떨어질 줄 알아!”
씹어 삼키듯 한 음절씩 토해 내자 그녀의 눈에서 불길이 튀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고 겁먹은 정수아가 두 걸음 물러섰다. 칼만 있었으면 이미 자신의 심장에 박혔을 거라는 공포가 얼굴에 떠올랐다.
최재현은 곧 싸늘히 말했다.
“너는 의사고 애 엄마야. 네가 자기 환자, 자기 자식 지키지 못해 놓고 어디다 대고 성질이야?”
익숙한 말이었다.
정서연은 피식 비웃었다.
“나가. 예진이 쉬어야 해. 쇼는 다른 데 가서 해.”
최재현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그를 분노하게 만든 건 따귀가 아니라 정서연의 반항이었다.
“이모...”
갑자기 최예진이 부르자 세 사람 사이의 팽팽한 공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정서연이 돌아서서 살피려는데 최예진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이모 혼내지 마. 이모는 잘못하지 않았어!”
힘이 빠진 와중에도 버럭거리는 모습이었다.
정서연이 잠시 멈칫했지만 아픈 아이를 생각해 따지지 않고 물었다.
“예진아, 어디 아픈 데 없어? 엄마한테 말해 줘.”
최예진은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보지도 않고 떨리는 손을 정수아에게 내밀었다.
“이모, 배가 너무 아파요. 안아 줘요.”
정수아는 화끈거리는 뺨에 옅은 미소를 띠고 최예진을 안아 올렸다.
“이모 여기 있어. 괜찮을 거야. 우리 예진이 용감해야지.”
그 광경을 보며 정서연의 이미 찢긴 가슴은 또다시 칼끝에 찔린 듯 아팠다.
“이모는 좋고, 엄마는 나빠.”
최예진의 목소리는 훌쩍임이 묻어 있었다. 정수아가 맞은 게 속상했던 모양이다.
정수아가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생각 말고 얼른 나아. 이모가 뭐든지 다 해 줄게.”
숨 막히는 장면을 더는 볼 수 없었던 정서연은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 한 층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모니터 수치를 확인한 뒤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낮이라 간호사가 최예진을 지키고 있어 정수아가 또 일을 저지를까 걱정되지는 않았다.
최재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따라나섰다.
“선생님, 토사물 검사 결과 나왔어요!”
문을 나서자 간호사가 서류를 들고 달려왔다.
정서연은 서류를 받아 들고 살펴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고단백에 당류가 많네요. 우유나 사탕 같은 간식이에요. 위장염에 고단백 간식은 최악인데, 영양도 없고... 제가 분명히 먹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결과지를 노려보다 홱 돌아선 그녀는 문가에 서 있는 최재현을 보았다. 그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도우미는? 왜 애한테 이런 걸 먹였대?”
그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도우미가 잘 모르고 먹였을 수도 있지.”
거짓말할 때마다 왼쪽 눈썹을 살짝 올리는 버릇, 그녀는 너무나 잘 알았다.
가슴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간식을 먹인 건 도우미가 아니었다.
“정수아지?”
그녀는 날카롭게 물었다.
“맞지? 너 알고 있었어?”
“아니야.”
그는 단칼에 부정했다.
“예민하게 굴지 마.”
정서연은 그를 빤히 노려봤다. 만약 증오가 칼이 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수없이 죽었을 것이다.
“최재현, 너 사람이야? 바람피우는 건 좋아. 그렇다고 우리 애를 괴롭히지는 마. 예진이 이제 몇 살인데?”
“수아가 아니라니까. 너야말로 귀 멀었어? 그리고 말도 좀 곱게 해.”
최재현은 차갑게 말했다. 그의 눈에는 짙은 안개 같은 감정이 숨어 있었지만 무엇을 감추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서연은 주먹을 꽉 쥐어 검사지를 구겼다.
“좋아. 인정 안 해도 상관없어.”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에 예진이 상태 너무 위험했어. 거의 쇼크 직전이었다고. 그런데도 정수아를 감싸는 걸 보니 너한테 예진이를 맡길 수는 없겠어.”
그 말을 듣고 최재현은 묘하게 기뻐 보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