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네가 집에 돌아온다면 모를까!’
최재현은 끝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정서연은 그를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병원 투자라는 게 나 때문에 시작된 거고, 나 때문에 철회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거라면... 굳이 다시 부탁하진 않을게. 병원 손실은 내가 감당할 테니까, 더는 이런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정서연은 그 말이 끝으로 더는 망설이지 않고 최재현을 피해 조용히 걸어 나갔다.
정서연은 한때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오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홀로 남겨진 최재현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이 텅 빈 듯한 공허감에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이렇게 바라보는 게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만큼 반복됐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시려왔다.
표정을 굳힌 채 그는 병실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의 얼굴에서 방금 전의 격한 감정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정서연은 병실에 없었고 대신 진도윤이 최병문 상태에 대해 조용히 설명하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나간 후, 병상에 누워 있던 최병문이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에는 약간 멍한 눈빛이었지만, 이내 최재현을 보자 곧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일은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냐?”
최재현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진심은 삼켰다. 대신 무난한 말로 바꿔 꺼냈다.
“편히 쉬세요. 이번 일은 제가 잘 정리해서 할아버지께서도 이해하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최병문은 비웃듯 낮게 코웃음을 흘리더니,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날 속일 생각은 마라. 직접 서연이한테 물어볼 거다.”
“누구한테 물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거짓말 안 합니다.”
최재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순순히 따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정서연의 태도는 분명 불쾌했다.
하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