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백연의 손끝이 지퍼에 닿는 순간 손목이 단단히 붙잡혔다.
주재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붉어진 귓불이 그의 겉치레 같은 침착함을 배반하고 있었다.
“백연 씨, 나도 당신과 감정을 쌓아가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모든 건 천천히 해야 해요.”
눈을 깜빡이며 백연이 물었다.
“왜 천천히 해야 하는데요? 어차피 마지막 단계는 자는 거 아니에요?”
주재현은 말문이 막히면서도 차분하게 답했다.
“우리는 지금 감정이 없잖아요. 지금 바로 그런 관계가 되면 당신한테 책임 없는 행동이죠.”
백연은 주재현의 그 부위를 슬쩍 가리켰다.
“근데 당신 몸은 나한테 반응하고 있잖아요.”
주재현은 그 장난기 어린 눈빛과 마주쳤고 이성이 무너지기 전에 그대로 자리를 피했다.
안방 욕실에서 물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 샤워였다.
물이 끊기고 욕실 문이 열렸다.
하반신에 수건만 두른 주재현이 걸어 나왔다. 선명한 근육 선을 따라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털며 잠옷으로 갈아입으려다 갑자기 동작이 딱 멈췄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침대에 앉아 있던 백연은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 밤 여기서 잘 거예요. 들어오면 안 돼요?”
주재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백연 씨는 옆방에서 자요.”
고개를 저으며 백연이 말했다.
“싫어요. 내가 옆방에서 자면 어떻게 감정을 쌓아요? 우리는 곧 약혼할 사이라고요. 하숙 룸메이트도 아닌데 왜 따로 자요?”
그러고는 스스럼없이 옷장을 열어 그의 잠옷을 골랐다.
“이거 입어요! 이게 촉감이 좋네요. 아니면 안 입어도 돼요. 나는 알몸이 더 좋긴 해요.”
주재현은 철저히 휘둘리는 느낌이 들었다.
잠옷을 건네며 백연이 눈을 감았다.
“여보, 얼른 갈아입어요! 진짜로 안 볼게요.”
반신반의하며 주재현은 수건을 풀려다 정면의 동그란 두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안 보는 게 아니라 대놓고 보고 있었다.
“허, 진짜 음란하네요.”
주재현은 어이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백연은 들킨 기색도 없이 중얼거렸다.
“본다고 살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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