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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어느 외국의 겨울. 민재하는 두꺼운 전공서를 품에 안고 외투 깃을 세운 채 도서관 앞 넓은 광장을 빠르게 걸었다. 이국의 생활은 마치 느린 재생 버튼이 눌린 듯했다. 소음도 속도도 모두 줄어들어 세상 전체가 잠시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더 이상 의도적인 마주침도 시끄러운 뒤섞임도 없었다. 시간은 오히려 더욱 길고 느리게 흘러갔다. 민재하는 어느새 혼자 도서관에 틀어박혀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 데 익숙해졌고 커피와 차가운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심리 상담은 여전히 이어졌다. 자신의 숨소리조차 또렷하게 들릴 만큼 고요한 방 안에서 그는 더 이상 분노나 회피로 자신을 무장하지 않았다. 대신 서툴지만 진심으로 잃어버린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어 마주 보는 법을 배워갔다. 그는 송하린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떠올렸다. 자신의 무심함, 그리고 그녀는 결코 떠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어리석은 자만까지 함께 떠올랐다. 그 기억은 여전히 날카롭고 아팠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고통을 숨기지 않았다. 그와 함께 살아가며 그 둔탁한 통증 속에서 감정과 책임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천천히 다시 세워갔다. 성장은 언제나 외로운 여정이었다. 그는 비틀거릴지언정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유나의 메시지와 국제전화는 처음 한두 달 동안은 자주 울렸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는 서운함과 불평이 섞여 있다가, 곧 분노 어린 추궁으로 변하더니 마지막에는 지친 듯 그를 붙잡는 말만 남았다. [민재하, 너 언제 돌아올 거야?] [거기 뭐가 그렇게 좋아? 혹시 다른 사람 생긴 거야?] [우리, 정말 끝난 거야?] 민재하의 반응은 처음엔 냉담하고 간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침묵으로 변했다. 이제 그는 사랑도 미움도 심지어는 피로감조차 오유나에게 단 한 방울의 에너지도 쓰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 너머로 들리던 그녀의 열정도 그의 차가운 무응답 앞에서 점점 식어갔다. 그렇게 수차례의 공허한 통화와 메시지가 이어진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건 어느 깊은 밤 짧고도 담담한 세 글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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