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그녀는 한수혁을 선택했고 무려 7년이나 지나서야 그의 본모습을 알아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선택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맞아요. 어리석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전 용기 있는 바보였어요. 구석에 숨어 자기 감정 하나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조차 없는 누군가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강도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눈빛은 마치 주변의 온도까지 얼려버릴 것처럼 차가웠다.
최지은은 자신의 말이 그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는 걸 직감했다. 순간 강도윤이 자신을 잡아 죽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이런 경우엔 늘 먼저 피하는 사람이 지는 거였다.
솔직히 말해 자신감은 바닥이었지만 최지은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결국 먼저 눈을 피한 쪽은 강도윤이었다. 그는 시선을 돌리더니 복도 끝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최지은은 입술을 깨물며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강도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에는 승리했다는 기쁨은 떠오르지 않았다.
죄책감이 밀려든 최지은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곱씹으며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재벌가의 후계자로 태어난다는 건 조상 몇 대가 쌓아온 피땀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는 일이라는 걸 최지은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들은 집안이 주는 영광과 풍족한 조건을 누리지만 동시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랑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그들은 항상 많은 요소를 생각하며 선택해야 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강도윤이 아무 생각 없이 용기만 내는 최지은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최지은은 복잡한 감정을 삼키며 복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방 앞에 도착한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로 문을 툭 치고 머리를 비우려 애쓴 뒤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때 맞은편에 있던 문이 철컥 열렸다.
최지은은 고개를 돌려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