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화

내일은 온시연, 즉 나의 언니의 결혼식이다. 예비 신부인 언니는 일어나서부터 해가 지려고 하는 지금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편히 소파에 앉아 쉬고 있고 나는 엄마 아빠의 지시에 따라 이 집의 시녀처럼 몇 시간 째 묵묵히 일만 하고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 나의 입에서 불만스러운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뭐가 불공평해? 그럼 내일 당장 결혼하는 네 언니한테 이것들을 시킬까? 잔말 말고 빨리 움직여. 어쩜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지, 쯧쯧.” 엄마인 이화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엄마의 대답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언니만 편애하는 엄마와 아빠가 내 편을 들어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얘기한 내가 멍청이였다. “나연아, 힘들지? 내가 할게. 이리 줘.” 온시연이 착한 척하며 내 손에 들린 청소도구를 가져가려 했다. 그러자 손이 청소도구에 닿기도 전에 아빠인 온서문이 황급히 말렸다. “내일 결혼한다는 애가 하기는 뭘 해? 얼른 위로 올라가서 쉬어.” 온시연은 나를 힐끔 보더니 못 이기는 척 위로 올라갔다. 엄마와 아빠는 다정한 눈빛으로 온시연을 위로 올려보낸 후 곧바로 다시 얼굴을 굳히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하고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너는 대체 왜 그 모양이야? 봐줄 만한 게 얼굴밖에 없어!” 엄마가 나를 훑어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와 온시연은 일란성 쌍둥이라 얼굴이 거의 복사하고 붙여넣기 수준으로 똑같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온시연은 성격이 온화하고 참한 것이 딱 부잣집 따님 그 자체였다. 게다가 악기도 잘 다루고 무용도 잘해 어릴 때부터 수많은 대회의 상을 휩쓸며 늘 부모님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었다. 반면 나는 행동하는 것도 남자아이 같고 무용은 물론이고 악기도 잘 다루는 게 없어 부모님께는 어디 가서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인 그런 천덕꾸러기 딸이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편애가 너무나도 서럽고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나 같아도 온시연을 더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편애한다고는 해도 나를 굶기고 때리거나 하며 학대한 것은 또 아니었기에 나쁜 부모님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나보다는 온시연을 조금 더 좋아할 뿐이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다 마지막으로 테이블까지 다 닦은 후 완전히 녹초가 되어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앉은 지 1분도 안 돼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연아, 언니한테 가서 우리가 또 챙겨줘야 할 건 없는지 한번 물어보고 와.” “네.” 나는 어기적거리며 일어나서는 분부대로 온시연의 방으로 올라갔다. 똑똑. “언니, 나야.” 나는 피곤한 얼굴로 노크하며 온시연을 불렀다. 그런데 대답이 없는 건 물론이고 문도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멋대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는데 있어야 할 사람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갔어.” 나는 온시연에게 전화하며 방을 삥 둘러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화장대 위에 있는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엄마, 아빠, 저 정말 박지한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 찾지 마세요?!” 나는 쪽지에 담긴 내용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엄마에게 쪽지를 보여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쪽지 내용을 보더니 마찬가지로 당황해하며 한 명은 온시연에게 전화를 걸고 다른 한 명은 사람을 시켜 온시연을 찾아오게 했다. 전화를 일곱 번쯤 걸었을 때 온시연이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시연아, 너 지금 어디야?!” 엄마는 온시연의 목소리를 기다리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공항 안내음 소리를 듣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너 혹시 지금 공항이야...? 어느 공항인데? 엄마가 지금 데리러 갈게!”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쪽지 보셨죠? 저는 정말 박지한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는 내가 장애가 있는 남자와 결혼해도 좋으세요?” 온시연의 말대로 박지한에게는 장애가 있었다. 반년 전, 박지한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겪었고 타고 있던 차가 완전히 전복되었었다. 빠르게 구출해낸 덕에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앞 유리의 파편이 눈에 들어가 버린 바람에 크게 다치게 되었다. 사고 이후 박씨 가문 측은 박지한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확실하게 알렸지만 그렇다기에는 그 뒤로 공식 석상에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박지한이 앞을 못 보게 됐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온시연은 참한 겉모습과 달리 자존심이 꽤 강한 편이었기에 아마 앞이 안 보이는 남자와 평생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저 찾지 마세요.” 온시연은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엄마가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온시연은 단 한 통도 받지 않았다. 아빠는 이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화풀이하듯 신문을 탁자 위에 탁하고 집어 던졌다. “이놈의 계집애, 집으로 잡아 오면 내가 어떻게 하나 봐!” 그러고는 공항 쪽으로 사람을 여럿 풀었다. 하지만 자정이 다 되도록 온시연을 찾았다는 연락은 한 통도 들려오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도 이쯤 되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 소파에 앉으며 내일 어떻게 할지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신랑 측에 한시라도 빨리 결혼을 취소하자고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뒤로 며칠 연기하던가.” 내가 물을 마시며 말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식이 시작되기에 지금이라도 빨리 얘기를 해줘야 했다. 내 말에 부모님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한 예감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에이, 아니죠...?” 엄마는 내가 생각한 게 맞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미쳤어요?!”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하며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나와 온시연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애초에 겉모습만 똑같지 성격은 완전히 달라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금방 내가 온시연이 아니라는 걸 눈치챌 것이다. 그리고 만약 신부가 바뀌었다는 게 밝혀지면 나는 가장 먼저 박지한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박지한 그 인간은 항상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으니까.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그랬다. 지각해서 담장을 넘으려 할 때면 박지한은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담장 아래에서 날 기다렸고 타협은 없다는 얼굴로 늘 단호하게 벌점을 줬었다. 아무리 내가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해도, 아무리 내가 두 가문 사이의 정까지 꺼내며 얘기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탓에 우리 반은 1년 내내 최하위 반이라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고 나도 학교에 부모님을 모시고 온 것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 후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욕을 먹어야 했다. 그런 일들이 그 뒤로도 많았기에 나는 박지한이 내 형부가 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거의 기겁하며 치를 떨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언니를 대신에 박지한과 결혼을 한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강경하게 안 된다고 하자 얼굴을 굳히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연아, 이건 말이 결혼이지 하나의 비즈니스나 마찬가지야. 우리는 지금 박씨 가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라고. 네가 언니 대신 신부 자리를 메꾸지 않으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회사 직원들까지 힘들어져.” 아빠도 내 곁으로 다가오며 한마디 거들었다. “네 엄마 말이 맞다. 만약 결혼이 파투나면 그때는 파산이야. 솔직히 박지한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니? 눈이 안 보이는 것만 빼면 뭐 하나 흠잡을 게 없는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솔직히 네 언니 아니었으면 너한테 이런 남자, 주어지지도 않았어.” 나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박지한이 얼마나 잘난 남자인지는 이미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기에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남자이기도 했다. 냉혹하고 무정하고 기분파인 데다가 독설까지 서슴지 않는 그런 남자였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사고로 눈까지 잃었으니 성격은 보나 마나 더 포악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남자와 사느니 차라리 평생 결혼하지 않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지도 모른다. 아마 온시연도 그걸 파악했기 때문에 도망을 친 게 틀림없다. 내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빠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보, 그냥 결혼은 없던 일로 해. 애가 이리도 싫다는데 어떻게 억지로 보내? 회사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역시 아빠라면 끝까지 강요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역시 내 의사를 존중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려 하기도 전에 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당신이 뭘 어떻게 해요? 여태 갖은 수를 써도 여전히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까 이 결혼을 진행한 거잖아요! 이대로 결혼식이 취소되면 우리는 끝이에요!” 엄마는 내 팔을 꽉 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왜 아직도 이렇게 철이 없어! 가문을 위해, 우리 회사를 위해 네 한 몸 이바지하는 게 그렇게도 힘들어? 애초에 너만 아니었으면 우리 집안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어!” 나는 그 말에 움찔했다. 20년도 더 넘은 일을 엄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당시, 우리 가문은 박씨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잘 나갔고 사람들도 온정 그룹이라고 하면 박씨 가문의 호연 그룹 못지않게 잘 나가는 기업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난 뒤 어는 날, 웬 스님 한 분이 다가와 엄마 배를 힐끔 보더니 쌍둥이라고 예지해주고는 둘 중 한 명은 엄마가 전생에 쌓은 덕으로 낳은 복덩이지만 다른 한 명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지독한 악연이라고 했다.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소리였기에 엄마와 아빠는 쌍둥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도 여전히 스님의 말은 헛소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분만실에 들어가 드디어 출산할 때 온시연은 몇 분도 안 돼 금방 나온 것과 달리 나는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출혈이 생겼고 아빠는 엄마가 잘 못 되기라도 할까 봐 회사 일도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뛰어와 미친 듯이 기도했다. 하지만 아빠가 회사를 나간 지 얼마 안 돼 돌연 제일 큰 거래처였던 회사에서 갑자기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당시 함께 병원으로 왔던 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아빠는 비서에게서 그 말을 듣자마자 휴대폰을 힘없이 바닥에 떨어트리더니 한참이 지나서 갑자기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스님 말대로 정말 악연이 따로 없군.”
Previous Chapter
1/100Next Chapter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