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어릴 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었기에 부모님의 시선이 왜 자꾸 온시연에게만 머물고 있고 왜 온시연만 예뻐하는지 몰라 그들의 시선을 빼앗으려 일부러 더 장난꾸러기처럼 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모님은 온시연을 봐줬던 것처럼 나를 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나를 말썽꾸러기로 볼 뿐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이유를 들어보니 편애의 이유도 이해가 갔고 죄책감도 느껴 그때부터는 더 이상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보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예전의 온씨 가문이었다면 아쉬운 소리 하지도 않았어. 너희 언니한테 결혼하라 하지도 않았다고. 나연아, 너도 이제는 어른이야. 어떤 선택이 더 도움이 될지 잘 생각해 봐!”
나는 시선을 내린 채 가만히 있다가 한참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돌아오면 그때는 다시 바꿀 수 있어요?”
그럴 일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굳이 물었고 엄마와 아빠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시연이가 돌아오면 바로 너랑 바꾸라고 할게. 넌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만 연기하면 돼.”
사실 지금의 온씨 가문은 박씨 가문과 연을 맺을 급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박씨 가문 어른들이 콕 집어 온시연을 선택했고 이에 부모님은 잘됐다며 얼른 결혼시키겠다고 했다.
온시연은 커서도 늘 단아하고 참한 모습만 보여줬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가문이든 왈가닥한 성격의 며느리보다는 어른들 말도 잘 듣고 내조도 잘할 것 같은 며느리를 더 원하고 있으니까.
스님의 말대로 온시연은 정말 부모님의 복덩이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얘기를 마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제안을 수락하겠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내키지는 않았다.
아무리 얼굴이 똑같아도 온시연은 늘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었고 나는 늘 그런 언니와 비교당하며 살아왔으니까.
학교에 다닐 때도 온시연은 거의 매일 같이 남자들에게 대시 받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날.
이윽고 결혼식 날의 아침이 밝았다.
아래층이 소란스러운 걸 보니 웨딩숍 직원들이 벌써 도착해 있는 듯했다.
엄마는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온시연이 평소에 입던 옷 스타일대로 나에게 입혀주고 머리도 단정하게 묶어주었다.
“입만 다물면 딱 네 언니네. 나연아, 이제부터는 최대한 말을 아껴. 알겠지?”
“네.”
엄마는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꼭 끌어 안아주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엄마의 품을 한껏 느끼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씩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안 들키게 할게요.”
“그래도 비상상황이 되니까 네가 듬직해 보이네. 시연이 그거 돌아오면 내가 아주 몽둥이로 다리를 분질러 버릴 거야!”
나는 그 말에 그저 옅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 말만 이렇게 하시지 막상 돌아오면 제일 먼저 품에 끌어안고 울어줄 사람이었으니까.
잠시 후, 장이란 아주머니가 웨딩숍 직원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가씨,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아주머니는 어릴 때부터 우리 자매를 봐왔던 사람이라 혹시 들키는 것 아닌가 했는데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온시연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엄마랑 아빠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슬퍼져서요. 사실 어제 한숨도 못 잤어요.”
내 말에 직원들은 메이크업 도구들을 내려놓으며 위로를 건넸다.
“다들 그러세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환한 얼굴을 하고 있으셔야 해요. 그래야 부모님께서도 안심하고 아가씨를 보내드리죠.”
“맞아요. 저희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님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그럼 부탁할게요.”
나는 자리에 앉은 후 눈을 감으며 모든 걸 다 직원들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때 아주머니가 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둘째 아가씨는 어디 있어요?”
내가 뜨끔하며 눈을 번쩍 뜨자 엄마가 일말의 동요도 없는 얼굴로 대신 답했다.
“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그쪽으로 보냈어요. 아마 늦게 돌아올 거예요.”
“그러시군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인 후 더 이상 내 행방에 관해 묻지 않았다.
신부 메이크업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거울 속 내 얼굴도 서서히 온시연으로 변해갔다.
이 정도면 박지한도 알아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들러리를 서줄 온시연의 친구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온시연이 선택한 들러리들은 그녀와 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낸 수준이 비슷한 가문의 따님들이었다.
“시연아, 너 오늘 너무 예쁘다.”
“들어오는 데 순간 여신이 앉아있는 줄 알았잖아. 왜 이렇게 예뻐?”
나는 그들의 칭찬에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근데 네 동생은 어디 갔어?”
임한 그룹 대표의 딸, 임세라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침 일찍 친구들 만나러 간 것 같으니까 나연이는 신경 쓰지 마.”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온시연의 친구들은 문이 닫힌 걸 확인하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한마디씩 했다.
“네 동생 뭐야. 지금 친구들 만나러 갈 때야? 언니가 결혼한다는데?”
“내 말이. 걔는 어떻게 아직도 철이 안 들었어? 내가 너희 어머니였으면 당장 집으로 끌고 들어왔을 거야.”
“내가 볼 때는 시연이가 질투 나서 나가버린 게 틀림없어. 일부러 나타나지 않아서 시연이를 창피하게 만들려는 거지.”
나는 그들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나와 몇 마디 나눈 적도 없는 애들이 왜 이렇게 날을 세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회사에 일이 생겨서 그거 해결하러 간 거야. 일부러 나간 게 아니라.”
내 말에 임세라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왜 그래? 평소에는 그렇게도 욕을 해대더니 왜 오늘은 네 동생 편을 들어?”
다른 친구들도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아차 싶어 얼른 고개를 숙이며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자 임세라가 알겠다는 듯 자기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걔가 또 너 괴롭혔구나. 그치? 하여튼 애가 못됐어.”
“아니야! 나연이는 날 괴롭힌 적이 없어.”
나는 진심으로 억울해하며 손까지 저었다.
온시연과는 상성이 안 맞는 자매이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었다.
“괴롭힌 적 없긴! 어릴 때 네 옷도 뺏고 장난감도 뺏고 조금 더 커서는 용돈까지 빼앗았다며? 어디 그것뿐이야? 고등학교 때는 일부러 가위로 드레스를 잘라놔서 연극 무대에 서지도 못했잖아. 이게 괴롭힘이 아니면 뭔데?”
온시연의 친구들은 마치 자기들이 괴롭힘을 당한 것처럼 분노하며 한마디씩 했다.
“난 온나연처럼 못된 애는 진짜 처음 봐. 만약 내 동생이었으면 가만 안 뒀을 거야!”
“그러니까. 교양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나연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시연이 말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도 괴롭힘당하고 있었을걸?”
나는 그들의 말이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내가 언제 온시연의 물건을 뺏고 드레스를 망쳐놓았다고 하는 걸까. 온시연은 대체 왜 친구들에게 그런 없는 말까지 꺼내며 나를 욕받이로 만든 거지?
설마 이제껏 또래 친구들이 나만 보면 이상하게 적대적이었던 게 전부 다 온시연 때문인 건가...?
같이 놀고 싶다는 내 말에 미간부터 찌푸렸던 것도 온시연이고 나랑 놀면 재미없다는 말을 매번 내뱉었던 것도 전부 온시연이었다.
그런데 상처는 자기가 줘놓고 정작 밖에서는 내가 자기를 괴롭히는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다.
대체 왜 그랬지? 애틋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매인데 왜 그렇게까지 한 거지?
나는 괴로운 마음을 애써 숨기며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대로 더 말을 이어나갔으면 결혼식이고 뭐고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온시연이 돌아오면 다른 무엇보다 이 상황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야, 왔어! 박 대표 왔어!”
그때 친구들 중 한 명이 잔뜩 흥분하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집 아래에는 어느새 검은색 승용차들이 가득 서 있었다.
웅장하게 늘어선 차량 중 제일 앞에 있던 포르쉐의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곧바로 박지한이 차에서 내렸다.
기다란 기럭지에 넓은 어깨, 정말 흠잡을 데 없는 모델 같은 피지컬이었다. 게다가 얼굴은 마치 신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빚은 조각상처럼 한번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박지한은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한 건지 안대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정상인처럼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박지한의 친구인 윤준영은 행여 그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차에서 내리자마자 얼른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박지한은 앞으로 얼마간 걷다가 시선을 느낀 건지 자리에 멈춰서더니 정확히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의 눈이 이렇게도 깨끗하고 반짝일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