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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울지 마, 눈 상해.

한진우와 결혼한 지 세 달째, 정확히 말하자면 전 연인의 아이를 품은 채 그와 결혼한 지 세 달째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간단한 채소볶음에 한진우가 시장에서 마감 세일로 겨우 사 온 다진 고기가 전부였다. 그는 거기에 전분을 잔뜩 섞어 보기에는 그럴듯한 고기완자 한 그릇을 쪄냈다. “다은아, 많이 먹어. 넌 지금 홑몸이 아니잖아.” 한진우는 고기완자 그릇을 내 쪽으로 밀어주며 잘 보이려는 듯 씩 웃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바로 묻혀버릴 외모에 두껍고 검은 뿔테 안경, 소맷자락이 헤져 보풀이 일어난 값싼 셔츠를 늘 입고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시립 도서관에서 사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에 고정 월급 150만 원을 받는데 4대 보험이 없어 앞날도, 희망도, 미래도 없었다. 나는 그 고기완자를 보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웁...” 입을 틀어막고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비좁은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자 오늘 하루 힘들게 먹어 놓은 것들이 전부 쏟아져 나왔다. 한진우는 완전히 당황한 얼굴로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을 들고 화장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못한 채 서성이는 모습이 꼭 잘못을 저지른 아이 같았다. “미안해, 다은아. 고기가 신선하지 않았나? 다 내 잘못이야. 괜히 싼 걸 사 와서...” 그는 계속 사과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는 늘 사과만 해왔다. [미안해, 택시 탈 돈이 없어.] [미안해, 이 집 방음이 안 좋아.] [미안해, 나 따라 고생만 시켜서.]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채 입을 헹구고 거울 속 여자를 바라봤다. 안색은 누렇게 떴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이게 정말 한때 제국에서 미모로 이름을 날리고 세상 무서울 것 없던 고씨 가문의 장녀 고다은이란 말인가? 그때 내 약혼자는 제국 최연소 최고사령관 박민재였다. 마시던 물은 항공편으로 공수한 빙하수였고 먹던 고기는 최고급 목장의 특급 공급품이었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 하나만 나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걱정해주던 삶. 그런 내가 지금은, 몸을 돌리기도 힘든 이 허름한 집에서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남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진우 씨, 제발 남자답게 좀 굴 수 없어? 하루 종일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 해?” 나는 물컵을 세면대에 세게 내려쳤다. 한진우는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숙였고 어색해진 듯 손으로 옷자락을 비볐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더 노력할게. 다음 달에는 도서관에서 폭염수당 나온대. 5만 원 정도... 그때 좀 더 좋은 고기 사 올게.” 5만 원, 박민재가 예전에 주차요원에게 아무 생각 없이 쥐여주던 팁보다도 적은 돈이었다. 한진우의 그 한심한 모습에, 가슴속에 차오르던 분노는 마치 주먹으로 솜을 친 것처럼 허무하게 꺼져버렸다. 남은 건 끝없는 허탈함뿐이었다. “됐어. 밥이나 먹자.” 나는 화장실을 나와 다리가 덜컹거리는 식탁 앞에 다시 앉았다. 내가 더 화내지 않자 한진우는 눈빛이 단번에 밝아지더니 식어버린 고기완자를 다시 데워 조심조심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날 밤, 나는 전분 냄새가 가득한 그 고기완자를 먹으며 그릇 안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맞은편에 앉은 한진우는 내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반쯤 들었다가 다시 거둬들였고 결국 서툴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은아, 울지 마, 눈 상해.” 그는 몰랐다. 내가 우는 이유가 이 고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사랑과, 완전히 망가진 내 인생 때문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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