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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 후 며칠 동안 이소희는 집에 틀어박힌 채 출국 준비에만 매달렸고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떠나기 전날, 이민준이 유지훈의 총각 파티에서 술에 잔뜩 취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소희는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집을 나서 오빠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는 빠르게 유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집사가 문을 열고 나와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예전에는 유지훈을 자주 보기 위해 기회만 있으면 이민준을 따라 이곳에 놀러 왔던 터라 이소희에게 이 저택은 눈 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다시 온 이곳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저택 곳곳은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고 알록달록한 소품들이 가득 있어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마당에 서 있던 몇 그루의 거대한 나무는 사라지고 대신 엄청 많은 장미꽃들이 차지했다. 검정과 흰색 위주였던 인테리어는 전부 새로 바뀌어 시원한 느낌의 파란 색조로 되어 있었고 집 안에 결혼식 소품과 귀여운 인형, 장식품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집사는 이소희를 알아보고는 다가오며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소희 씨, 요즘 유 대표님이 결혼 준비로 정말 바쁘세요. 소희 씨도 한동안 안 오셔서 길이 좀 헷갈리시죠? 예전에 소희 씨가 마당에 소나무들이 울창해서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예비 사모님이 별로 안 좋아하셔서 유 대표님이 전부 베어내라고 하셨어요. 좀 아깝긴 하죠.” “집 안의 가구랑 인테리어도 전부 예비 사모님의 취향으로 바꿨는데 훨씬 예뻐졌죠? 유 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앞으로 집안일은 전부 예비 사모님의 말씀을 따르시겠다고요. 유 대표님이 결혼하면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는데 예비 사모님을 정말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이소희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 정말 많이 사랑하는 게 느껴져요.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정도로요.” 긴 복도를 지나 휴게실에 다다랐는데 안은 몹시 시끄러웠다. 이소희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이민준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했다고 말했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유지훈이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민준을 부축해 나오다가 그녀를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이소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민준은 앞이 잘 안 보이는지 눈을 비비며 손을 흔들었다. “내... 내일 네 결혼식엔 못 가. 내가 어디 좀 가야 해서...”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는 정신을 잃었다. 유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일 무슨 일이 있는데 네 오빠가 그렇게 바빠? 내 결혼식도 못 올 정도로?” 이민준이 공항까지 자신을 배웅해 줄 예정이라는 걸 이소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떠난다는 사실을 유지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급한 일이 있겠죠, 뭐. 아니면 술김에 하는 말일 수도 있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이민준을 부축해 나가려 했지만 몇 걸음 못 가 유지훈이 다시 불렀다. “그럼 너는? 내일 결혼식에 올 거야?” 발걸음을 멈춘 이소희는 눈빛이 어두워졌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오빠도 제가 가는 걸 원하지 않을 거고 지훈 오빠도 저를 보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안 갈 거예요. 여기서 미리 축하해 드릴게요. 두 분, 행복하게 지내시고 백년해로 하세요. 나중에 또 축하해 드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을 듣자 유지훈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이소희를 붙잡고 물어보려는 순간, 최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유지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지훈아,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돼. 내일 늦으면 나 진짜 안 봐준다?” “알았어, 알았어. 네 말 들을게.” 그가 최가인을 다정하게 달래는 말투를 들은 이소희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 이민준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그녀는 꿈도 꾸지 않고 푹 잤으며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아침 여덟 시가 되었다. 아침을 먹은 뒤 이민준은 이소희를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비행기는 오전 열한 시 정각에 출발할 예정이었고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이소희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오빠, 이제 결혼식장으로 가.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내가 도착하면 바로 전화할게.” 이민준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소희는 혼자 탑승구로 들어가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 전, 그녀가 휴대폰을 끄려는데 유지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소희는 멈칫했다가 전화를 끊어버렸고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그녀는 자신이 스물몇 년 동안 살았던 이 도시를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보고는 눈을 감았다. 이소희는 이제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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