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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응, 좋아해... 정말 많이 좋아해... 내 휴대폰엔 네 사진만 가득하고 메모장에는 네가 좋아하는 거랑 싫어하는 걸 전부 적어놨어. 네 카카오톡 채팅창은 십여 년째 맨 위에 고정해 뒀고 네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면 난 기뻐서 밤새 잠을 못 잤어. 너한테 쓴 편지도 엄청 많은데 나중에 기회 되면 보여줘도 될까?” 유지훈을 알게 된 지 8년이 되었는데 이소희는 그가 이렇게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걸 처음 봤다. 술김에 진심을 내뱉는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소희가 용기를 내 고백했던 날, 유지훈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때 이소희는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면 언젠가는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8년이 아니라 18년, 28년을 더 기다린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유지훈의 마음을 그녀가 어떻게 흔들 수 있겠는가. 이소희는 복도에 더 머물지 않고 조용히 룸으로 돌아왔다. 이민준 역시 그녀가 이런 자리를 힘들어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녀를 데리고 먼저 나왔다. 두 사람은 클럽에서 나가 택시를 잡으려 했는데 앞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최가인과 유지훈이 술에 취한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양쪽이 심하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지훈은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있던 술병을 집어 한 사람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상대 쪽 사람들이 완전히 격분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로비가 아수라장이 됐다. 욕설과 비명이 뒤섞이고 술병과 의자가 사방으로 날아다녔으며 그 광경을 본 이민준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외투를 벗어 던지며 한마디만 남기고 난투극 속으로 뛰어들었다. “소희야, 위층 올라가서 사람들 불러와!” 이소희는 불안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급히 올라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내려왔을 때 끔찍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한 남자가 술병 몇 개를 잡고 구석에서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최가인에게 집어던지려 하고 있었다. 겁이 나서 숨이 턱 막혔지만 이소희는 눈을 크게 뜬 채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 유지훈은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고 최가인을 끌어안으며 자신의 몸으로 모든 공격을 막았다. 곧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그의 흰 셔츠를 붉게 물들였고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이소희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최가인을 지키는 유지훈의 모습을 보자 이소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제야 그녀는 최가인에 대한 유지훈의 사랑은 정말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깊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잃었던 이소희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수술실 불이 막 꺼지고 의사가 땀을 닦으며 나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그런데 ‘가인’이라는 분은 환자분의 아내이신가요? 환자분이 의식이 없는데도 계속 그 이름을 부르시더라고요. 가능하다면 가인이라는 분이 중환자실에서 환자분의 곁을 지켜주면서 말을 많이 걸어주시면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유지훈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최가인에게 빨리 병실로 가보라고 재촉했다. 그녀가 서둘러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 이소희는 이민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오빠, 우리 이제 집에 가자.” 이민준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소희는 캐리어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이민준은 내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기에 이소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보지 마. 나 괜찮아. 며칠 뒤에 내가 떠나면 우리 한동안 못 보잖아. 나 오빠가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아. 자주 보러 와줘.” 그 말에 이민준은 가슴이 아파 평소처럼 그녀의 볼을 살짝 주물렀다. “당연하지. 오빠가 시간 날 때마다 갈게. 그리고 네가 그 녀석이랑 어떻게 지내는지도 꼭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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