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내 여자야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강지연은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온몸이 경직된 채 고개만 돌려서 애원했다.
“여기서는 싫어요.”
강지연의 눈에 담긴 두려움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우현은 남의 말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고 본인이 직접 확인해야 했다.
당구실 안 조명은 어두운 편이었고, 강지연은 진우현 앞에서 아주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 아무리 어두운 조명이라고 해도 진우현의 뜨거운 시선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름처럼 여기도 예쁘네. 너희 부모님이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어주셨어.”
진우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뜨거운 손바닥으로 눈앞의 말랑하고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졌다.
진우현이 부모님을 언급하자 강지연은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목소리로 애절하게 빌었다.
“우현 씨, 안 돼요..”
민해윤은 중요한 타이밍에 안 된다고 말하면 남자는 더 원하게 된다고 가르쳤었다.
다음 순간, 강지연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곧이어 버클을 푸는 소리가 들려왔고 강지연은 남몰래 이를 악물었다.
쾅.
강지연은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라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안재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눈앞의 광경을 본 순간 두 눈에 핏발이 서면서 순간 진우현을 죽이고 싶어졌다.
진우현은 강지연의 몸에서 손을 뗀 뒤 다시 버클을 잠그고 말했다.
“오늘 밤 내 흥을 깨려고 일부러 온 거야?”
“내 여자야.”
안재우가 이를 악물고 잇새 사이로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도드라졌고 겉으로 드러난 팔뚝의 근육은 흥분으로 인해 살짝 부풀었다.
눈앞의 남자가 진우현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주먹을 휘둘렀을 것이다.
진우현은 몸을 살짝 틀면서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강지연을 바라보며 짓궂게 물었다.
“연애해 본 적이 없다고?”
강지연은 몸을 돌려 안재우를 마주하며 유유히 말했다.
“난 이미 몇 번이나 거절했어. 이렇게 자꾸 들러붙는 거 진짜 비호감이야. 그리고 재우 씨는 이미 약혼자가 있지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말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가진 게 없는 평범한 학생이라 괜히 얽혀서 화를 당하고 싶지는 않거든.”
강지연은 안재우가 약혼자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안재우의 약혼자 서효진이 강지연을 찾아왔을 때, 안재우가 마지막 인사도 없이 해외로 도망쳐서 그녀와 절대 만나지 않으려고 했을 리는 없었다.
강지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바지를 입었다.
안재우는 두 눈이 벌게진 채 강지연을 죽어라 노려보았다.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기세였다. 안재우는 몇 번이나 침을 삼키면서도 결국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강지연은 고개를 돌려 진우현의 팔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현 씨, 장소를 바꾸는 게 좋겠어요.”
진우현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강지연을 힐끗 보더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지연은 진우현을 따라 나갈 때 일부러 안재우를 피해서 반대편으로 갔다.
강지연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진우현이 문밖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지연은 나랑 반년을 만났어. 걔 엉덩이에 있는 점은 눈 감고도 만질 수 있는 정도라고. 그래, 좋아. 내가 양보할게. 어차피 나도 걔랑 자는 거 질렸었거든.”
앞에 있던 남자가 우뚝 멈춰 섰다.
강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옷자락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우현 씨, 저 말 믿지 마세요.”
“꺼져!”
사실 강지연은 안재우가 나타난 순간부터 오늘 망했다는 걸 직감했다.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
강지연은 안재우에게 붙잡혀 억지로 룸에서 끌려 나와 그의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
차 문이 닫히는 순간 문은 잠겼고, 파란색의 페라리는 굉음을 내면서 빠르게 달렸다.
강지연은 어제까지만 해도 앞으로 평생 안재우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안재우와 고작 6개월을 만났다. 그런데 안재우의 약혼녀가 학교로 찾아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뺨을 두 대 때리며 안재우랑 계속 만나면 아주 비참한 꼴을 보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어디서 난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강지연은 굳이 안재우에게 직접 연락해서 왜 자신을 속였냐고 따져 물으려고 했고,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그의 회사와 집에 찾아가서 그의 행방을 찾으려고 했다.
그 뒤 서효진이 했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강지연의 어머니는 능욕당했고 강지연의 아버지는 그 짐승 같은 놈을 칼로 찔러 죽인 데다가 실수로 같은 마을에 살던 양아치들까지 다치게 하여 석 달 전 사형당했다.
게다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4억 원의 배상금을 떠안게 되었다.
스물한 살의 강지연은 연애 한 번에 집안이 풍비박산 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살면서 또 한 번 안재우를 만나게 되면 자신이 그를 칼로 찌르지는 않을지 생각했다.
강지연의 손이 에코백으로 향했다.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강지연은 칼자루를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