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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성나정을 혼돈의 어둠에서 끌어올렸다. “깼어요?” 의사가 다가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며 말을 이어갔다. “3층에서 떨어졌는데 다행히 다리 하나만 부러졌어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죠.” 성나정은 갈라진 입술로 웃어 보이려 했지만 이마의 상처에 자극이 생겨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운이 좋다고?’ 솔직히 그저 아쉬웠다. 임수아까지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지 못한 것도, 자신만 다쳐 손해를 본 것도. 의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살짝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유하준. 그의 눈가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피곤함이 옅게 깔려 있었다. 성나정의 목소리는 허약했지만 말투는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유 검사님이 여기까지 찾아와주니까 정말 감동이네. 내가 죽었나 보러 온 건가?” 유하준은 침대 곁으로 다가와 두꺼운 석고에 싸인 다리와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 깊은 곳에서 무언가 스쳤지만 너무 짧아 착각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정아, 아무리 심리치료가 싫다고 해도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은 안 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뛰어내린 걸로 병원도, 모두도 큰 피해를 봤어.” 유하준의 시선은 붕대가 감긴 성나정의 발로 향했다. “수아가 널 보호하려고 손을 짚었는데 의사 말로는 그 손이 망가질 수도 있대.” ‘보호? 진짜 연기력 대단하네.’ 성나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유하준, 나 혼내러 온 거면 돌아가. 듣고 싶지 않아.” 그동안 수도 없이 설명해 봤자 돌아온 건 단호한 부정뿐이었다. 사랑도, 증오도 힘이 있어야 한다. 그녀는 이제 지쳤다. 아버지 문제도 정리됐기에 더 이상 그와 말 섞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유하준은 떠나지 않았다. 그는 옆 트레이에서 연고와 면봉을 들며 말을 돌렸다. “다리 상처, 약 바꿔야 해.” 그가 다가오자 성나정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만지지 마!” 그러나 유하준은 어떤 항의도 듣지 않는 사람처럼 성나정의 다리를 잡고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손끝은 따뜻했지만 힘이 강해 저항할 수가 없었다. 성나정이 몇 번 몸부림쳤지만 돌아온 건 더 강한 제압과 상처가 자극돼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뿐이었다. 유하준은 그녀가 아파한다고 생각했는지 한때 성나정을 사랑하던 시절처럼 발목을 살며시 불어 주었다. “곧 괜찮아질 거야.” 익숙한 손길에 성나정은 순간 얼어붙었고 눈가가 붉어졌다. ‘왜... 왜 날 걱정하면서도 이렇게 상처를 주는 걸까? 대체 왜?’ 과거의 행복과 지금의 잔혹함이 선명하게 대비되며 성나정의 증오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성나정은 갑자기 고개를 숙여 그의 어깨를 세게 물었다. 유하준은 아파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좀 아프겠지만 참아.”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다음부턴 스스로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저항하지 마.” 성나정은 이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은은하게 피 냄새가 퍼졌고 기억의 파편이 머릿속에 떠올라 버렸다. 한때 그녀가 다치면 유하준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상처를 돌보며 말해주곤 했다. 겨울에 얼어붙은 성나정의 발을 품고 놀라면서도 손으로 덮어 따뜻하게 데워주던 사람. 그녀가 유하준의 제복을 장난삼아 입어도, 정리해둔 서재를 흐트려놓아도 허용하던 사람. 잊어버리려 했던 작은 따뜻함들이 지금은 너무 일찍 떠올랐다. 성나정은 자신의 이빨 자국에서 번져 나오는 붉은 얼룩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유하준의 어깨를 놓아줬다. 그때, 유하준은 마지막 거즈를 붙이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의 잔혹할 만큼 침착하게 말했다. “수아의 오른손 신경이 끊어졌어. 새 힘줄을 이식해야 기능이 회복될 거야.”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정아, 네 힘줄을 수아에게 이식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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