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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송찬미는 착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엄마 속을 썩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이만큼 자라면서 저질렀던 가장 큰 일탈이라고 한다면, 신승우에게 첫눈에 반해 1년 넘게 짝사랑한 것이었다. 신승우는 정말이지 너무나 잘생겼다. 깊은 눈동자는 차가운 연못처럼 그윽했고 콧대는 높고 곧았으며 이목구비는 마치 신이 정성껏 조각한 것처럼 정교했다. 딱딱한 정장이든 캐주얼한 셔츠든 그는 뭐든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처음 사랑에 눈을 뜬 사춘기 소녀가 그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빈부격차에서 오는 자격지심 때문에 송찬미는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땐 학업 부담도 커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그녀는 마음속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우연인지 뭔지 송찬미가 신지영의 집에 간 횟수는 사실 많지 않았지만 갈 때마다 신승우가 집에 있었고 두 사람은 늘 마주쳤다. 어쩌다 무심코 신승우와 시선이 마주치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시선을 돌리곤 했다. 깊은 잠에 빠진 송찬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흰색과 파란색 조합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단순하고 소박한 차림이었다. 그날은 그녀가 처음 신지영의 집에 갔던 날이었다. 그녀는 신지영을 따라 별장으로 들어섰고 눈앞의 호화롭고 아름다운 대저택을 보자 부러움과 동시에 자격지심이 싹텄다. 그녀는 책가방 끈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갑자기 조금 긴장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기 전에도 신지영의 집이 부자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부자일 줄은 몰랐다. 집 앞 정원 하나가 학교 농구장 몇 개를 합친 것보다도 컸으니 말이다. 한여름이라 각양각색의 꽃들이 만발했고 바람이 불자 꽃향기가 가득 퍼졌다. 나비들이 꽃밭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풍경 같았다. 별장 뒤편 수영장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고 하늘색 타일 덕에 물은 아름다운 연푸른빛으로 반사되었다. 그녀는 주눅 든 걸음으로 신지영의 뒤를 따랐다. 수영장을 지날 때, 첨벙하는 물소리와 함께 수영장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그 사람과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숨 막힐 듯이 아름답고 공격적인 얼굴이었다. 스무 살의 신승우는 차갑고 그윽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고 물방울이 햇빛을 반사하며 그녀의 심장 깊은 곳까지 뜨겁게 파고들었다. 그날이 그녀와 신승우의 첫 만남이었고 그가 그녀에게 건넨 첫 마디는 안녕이라는 간단한 두 글자뿐이었다. 꿈의 장면이 바뀌고 시간은 수능이 끝난 후 신지영의 생일 파티로 흘러갔다. 그녀는 칼같이 다려진 정장을 입은 신승우와 명품 드레스를 입은 노민희가 함께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의 외모는 막상막하였고 선남선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송찬미는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자신의 심장을 꽉 쥐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숨을 쉴 때마다 억눌린 고통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가슴이 은은하게 아파왔다. 심장이 아픈 감각이 너무나 선명해서 송찬미는 꿈에서 깨어나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선은 잠시 동안 초점을 잃고 헤맸다. ‘왜 또 고등학교 때 꿈을 꾼 걸까. 아마도 어제 신승우와 얽힌 일이 많아 잠들기 전까지 그 생각만 한 탓이겠지.’ 송찬미는 침대에 잠시 누워 있었다. 눈빛이 점차 맑아졌다. 꿈은 깼지만 현실은 꿈보다 훨씬 더 숨 막히고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찬미가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에 엄마의 부재중 전화나 메시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열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심영준에게서 온 전화 한 통과 식당 사모님에게서 온 전화 세 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송찬미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다시 걸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 새벽 파출소에서 신승우가 경찰과 이야기를 마친 후, 식당 사장 조성재는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되었고 신승우의 압박에 조성재는 마지못해 그 자리에서 송찬미의 이번 달 월급을 정산해 주었다. 그러니 사모님이 전화한 건 욕을 하거나 아니면 사정을 하려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송찬미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월급도 다 받았고 앞으로 그 가게에 다시 갈 일도 없을 테니 송찬미는 더 이상 그들과 얽히고 싶지 않아 깔끔하게 식당 사모님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일어나 씻고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한 시가 넘었다. 잠을 오래 자지 못해서인지 머리가 좀 아팠다. 송찬미가 침실 문을 열자 문 앞에 쇼핑백 두 개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안에는 어제 입었던 옷과 바지가 들어 있었다. 거실에서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옷은 직원이 가져가서 세탁한 거야.” 그가 직접 자기 옷에 손대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신승우는 늘 타인과의 경계가 명확한 인물이었다. 아마 그녀가 오늘 입을 옷이 없을까 봐 직원을 시켜 세탁해 준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송찬미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옷을 침실로 가져가 갈아입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는 하셨는지 물었다. 송은정은 간병인이 차려준 밥을 먹었다고 대답했다. 송찬미는 멍하니 되물었다. “간병인이요?” “응, 네가 보낸 거 아니었어?” 송은정이 되물었다. 송찬미는 전화를 받으며 침실에서 나왔다. 신승우는 거실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업무를 보고 있는 듯했다. 송찬미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 입 모양으로 간병인이라고 묻자 신승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찬미는 그제야 안심했다. 전화를 끊고 송찬미는 소파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에 낯선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한테 간병인 불러주셔서 고마워요.” 남자는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툭 던졌다. “별거 아니야.” “그리고 오늘 아침 일도 정말 폐 많이 끼쳤어요.” 송찬미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신승우는 문자에 답장을 보내고 나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미 어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외투까지 걸친 채, 누가 봐도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신승우가 물었다. “가려고?” “네, 너무 오래 신세 졌어요. 병원에 엄마 뵈러 가야 해서요.” 남자의 길고 차가운 눈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사람 시켜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승우 오빠. 저 혼자 버스 타고 가면 돼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승우는 이미 전화를 걸고 있었다. 송찬미는 그가 기사에게 호텔로 사람을 데리러 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거절할 틈도 주지 않았다. 송찬미는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내린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송찬미는 신승우 옆 1인용 소파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자는 옆에서 헤드폰을 끼고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집중한 모습이라 송찬미는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아무 말 않고 있자 오히려 신승우가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테이블에 먹을 거 있어.” 송찬미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맙다고 말한 뒤 일어나 음식을 먹으러 갔다. 테이블 위에는 찐만두 한 접시와 찍어 먹을 소스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만두 하나를 집어 한입 베어 물고는 눈을 반짝였다. 이씨네 찐만두. 그녀가 좋아하는 가게였다. 이 가게는 7, 8년 된 오래된 곳으로 만두는 항상 신선한 재료로 바로 빚어 만들었다. 배달은 안 되고 직접 가서 사야만 했다. 송찬미는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그녀의 각도에서는 남자의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신승우도 이씨네 찐만두를 좋아하나? 아마 신지영이 추천해 줬겠지.’ 고등학교 때 그녀가 신지영에게 이 집 찐만두를 강력 추천했고 나중에는 신지영도 그 맛에 푹 빠졌으니까. 막 다 먹었을 때쯤 기사가 도착했다. 송찬미는 신승우를 지나쳐 문을 열러 가면서 그에게 인사했다. “승우 오빠, 저 갈게요.” 컴퓨터 화면 너머, 화상 회의를 하던 회사 임원진들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환청인가? 방금 우리가 뭘 들은 거지? 대표님 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는데, 심지어 달콤하게 승우 오빠라고! 대박 스캔들! 저 철벽에도 꽃이 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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