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별장 침실의 익숙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가정부가 곁을 지키고 있다가 그녀가 깨어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그녀의 멍한 눈빛을 보고 가정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젯밤은 대표님이 사모님을 업고 오셨어요. 밤새 한숨도 안 주무시고 물도 떠다 주시고 토한 것도 치워주시고... 사실 대표님도 사모님을 걱정하고 계세요.”
예하늘의 마음은 씁쓸함으로 가득 찼다.
‘몇 번이고 나를 내버려 두고 가면서 왜 또 신경 쓰는 거지? 도구인 내가 망가질까 봐 걱정하는 건가?’
가정부는 망설이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갑자기 물었다.
“며칠 전부터 속이 안 좋으시고, 요즘 입맛도 없고 자꾸 어지러워 쓰러지시는 걸 보니... 혹시... 임신하신 건 아니에요?”
막 입을 열려 하던 예하늘은 기도훈이 문밖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꼿꼿하게 서 있는 그는 시선을 오롯이 그녀의 배에 고정했다. 어두운 눈빛은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그녀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결국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위염이 좀 심해진 거예요.”
문밖에 있던 기도훈의 눈에 아주 빠르게 안도감이 스치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방에 들어오며 물었다.
“몸은 좀 나아졌어? 오늘 아버님이 집안 잔치를 여시는데 같이 가자.”
예하늘은 더는 반박할 기운이 없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집안 잔치라는 것은 또 다른 모욕일 뿐이었다. 잔치에서 예태섭은 술잔을 들고 헛기침을 했다.
“하늘이가 이제 결혼했으니 내 마음의 짐 하나를 덜었다. 나는 너의 엄마와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할 생각이고, 결혼 후에는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 생각이다.”
예하늘의 젓가락을 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은근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마비감이었다. 이미 예상했던 날이니 상관없었다.
예하늘의 침묵을 본 정유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지나치게 달콤했다.
“제게 작은 소망이 하나 있는데 동생이 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 엄마가 아줌마가 생전에 하늘이를 위해 디자인했던 웨딩드레스를 정말 좋아하세요. 그걸 엄마 결혼식에 입고 싶어 하시는데 그 드레스를...”
탁!
예하늘은 갑자기 젓가락을 탁자에 내리쳤다. 모두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냉담하게 정유리를 바라보았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웨딩드레스를 입어도 된다고 생각해? 정유리, 그게 가능하다고 봐?”
그 웨딩드레스는 어머니가 살아생전 정성을 다해 그녀를 위해 디자인한 유작이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결혼식에만 입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남긴 가장 소중한 추억이자 축복이었다.
예태섭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예하늘은 더는 들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
정유리는 즉시 그녀를 뒤쫓았다. 복도에서 예하늘의 앞을 막아선 그녀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예하늘, 네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어. 아빠를 인정 안 할 줄 알았는데. 왜? 예씨 집안 재산이 아까워서?”
예하늘은 차갑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넌 그냥 내 모든 걸 빼앗고 싶어 하잖아. 난 절대 네 뜻대로 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몸을 숙여 정유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기도훈까지도. 내가 기도훈과 이혼하면 법적으로 그 사람의 재산 절반을 가져갈 수 있어. 그런데 너는? 겨우 내가 쓰고 남은 찌꺼기나 주워 담고 재혼할 걸 기다리는 신세잖아.”
정유리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에는 연민과 승리감이 가득했다.
“재산 절반을 가져간다고? 예하늘, 무슨 꿈을 꾸는 거야? 너와 도훈 씨의 혼인 신고는 가짜야. 넌 도훈 씨의 아내조차 아닌데 뭐로 재산을 나눠 가져갈 건데?”
“가짜라고? 말도 안 돼!”